7080 가수/7080 남자가수

<하남석의 이 노래 : ‘밤에 떠난 여인’>

방랑시인 2021. 11. 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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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가 히트하려면 우선 노래가 좋아야 하겠지만, 노래와 가수가 궁합도 잘 맞아야 합니다. 노래가 가수와 맞지 않는 옷이라거나 따로국밥과 같다면 히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대적 환경 내지 유행과 궁합이 맞아야 합니다. 유행가라는 이름이 달리 유행가가 아닙니다. 이것을 혹자는 ‘운빨’이라고도 하는데, 노래실력이 출중하고 평생을 노래를 부르면서 무명으로 가수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 중에 운빨이 안 좋아서 빛을 못 보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은 모든 궁합이 완벽하게 맞는 멋진 곡과 가수의 하모니입니다. 인트로의 기타연주가 무척이나 세련된 감각이 느껴지면서도 하남석 특유의 우수에 젖은 정감이 넘치는 음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딱 듣자마자 푹 빠져버리는 대단한 곡입니다. 하남석하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밤에 떠난 여인’을 떠올리는 올드팬들이 무척이나 많을 것입니다. ‘밤에 떠난 여인’은 많은 가수가 불렀지만, 하남석이 부른 곡이 단연 최고일 정도로 궁합이 기가 막힌 노래입니다.

하남석이 ‘밤에 떠난 여인’을 부를 때는 통기타 가수가 붐을 이루던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유신의 광풍이 몰아치는 암울한 정치상황임에도 대중가요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고, 변함이 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은 우리의 대중가요는 6.25의 와중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로 유명한 ‘전우야 잘 자라’가 유행할 정도로 대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선야곡’이나 ‘가거라 삼팔선아’ 등 6.25를 전후한 히트곡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하남석이 활약했던 당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광풍을 몰아친 통기타의 마력은 당대의 청년들에게는 기성가수들의 트로트일변도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이 있던 시대에는 ‘통금’으로 불리던 통행금지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밤에 떠나면 택시도 버스도 없는데 어떻게 가는가, 하는 당대의 아재개그가 썰렁하게 퍼지곤 했습니다. ‘밤에 떠난 여인’은 전체 가사를 모르더라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 기약도 할 수 없는 이별’이라는 후크 부분은 누구나 한번 들으면 뇌리에 깊이 박힐 정도로 뜨거운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데뷔 앨범의 간판 곡이었던 ‘밤에 떠난 여인’을 부른 하남석은 대마초 파동으로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다가 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노름꾼들이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말로 초심자의 행운을 경계하는데, 하남석은 ‘밤에 떠난 여인’이 뜬 이후에 빅히트곡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중후하면서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무척이나 아까운 상황입니다. 실은 하남석의 보석같은 목소리가 아까워서라도 그는 끊임이 없는 히트곡을 내야만 하는 가수임에도 우리에게는 그리 많지 않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wWZa8rLL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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