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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의 유행어, '꿍다라닥닥 삐약삐약'>

방랑시인 2020. 11. 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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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의 일상에서 웃는 순간보다 근심과 걱정에 휩싸여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남을 웃기게 하는 코미디언의 역할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걱정을 덜어주고 웃음을 안겨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그러나 남을 웃기게 하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는 고역이다. 바보스러운 언동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등의 코믹한 요소를 만들어야 가능하기 떄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스운 상황을 만든 사람 자체를 우습게 보고 가볍게 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남을 웃기는 사람은 남 몰래 우는 상황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지금은 올드보이 외에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지만, 70년대 '땅딸이' 이기동과 '비실이' 배삼룡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둘다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말투에서 온 국민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이기동은 당시 유행어의 제조기였다.

북한말을 흉내내어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똑이니끼니 딱이야요. 딱이니끼니 똑이야요.'하는 말부터 일부러 말을 비틀어서 '아. 어디렁기(어디론가) 멀리 까기시꾸나(멀리 가고싶구나)!'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서 코흘리개부터 노인까지 흉내를 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기동 유행어의 끝판왕은 단연 이거였다.

쿵다라닥닥 삐약삐약,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일부에서는 '쿵타라닥닥'이라고 표기를 하나, 이기동의 당시 발음으로는 '쿵다라닥닥'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버전이 있었다.

쿵다라닥닥 삐약삐약, 닭다리 잡고 뜯어뜯어.

닭다리를 잡고 삐약삐약 하는 것보다 뜯어먹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는지 가끔은 이기동이 뜯어뜯어로 살짝 버전을 달리했다. 그러다가 아예 줄여서 '쿵삐닭삐'라는 약어를 쓰기도 했다. 박력을 보여준다고 밥을 직각으로 먹는다거나

직각으로 걸음걸이를 걷는다는 등의 특이한 행동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뜬금없는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사회정화라는 이상한 모토가 전두환의 신군부에서 내세우면서이다. 코미디언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질'이라는 낙인을 씌우고(학살보다 저질이 나은데, 코미디가 무슨 저질이 되는지 알 수는 없다), 이기동을 삼청교육대에 보내면서 이기동의 활약을 사실상 매장했다.

물론 이기동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땅딸사와(sour의 일본식 표기로 신맛의 음료)'와 '땅딸요구르트'사업을 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사실은 있다. 그러나 물의에 대하여는 출연정지나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하면 되는 것이지, 삼청교육대로 끌고 갈 일은 아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이후 이기동은 영영 브라운관에서의 맹활약을 할 수가 없었고,

간염과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게 모진 말보다는 그가 있어서 암울했던 70년대가 행복했다는 덕담을 남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iRqT6HJ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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