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성심당 이야기>
‘대전시의 성심당’이 아니라 ‘성심당시의 대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대전을 대표하는 제과점이기에 그런 말이 생겼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초 제가 자주 먹었던 빵을 만들었던 성심당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대전시에서 유명 제과점 중의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대전을 떠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은 물론 외국인이 손꼽는 대전의 명소가 되었다니 성심당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묘하게 대전사람의 자부심을 자극하면서 그저 감개가 무량합니다.
1980년대초 대전시에서는 유명 제과점이 몇 개 있었습니다. 성심당 대각선 방향으로 맞은편에 있었던 봉봉제과(모 건물이 미준공상태인 바로 그 자리), 대전역 맞은편의 뉴욕제과(배우 전양자가 실소유주라는 설이 파다했습니다), 대전역전통 대로에 자리잡은 경일제과(중고생 미팅장소로 유명했습니다) 등이 유명 제과점으로 꼽혔습니다. 이렇게 당시만 하더라도 성심당은 유명 제과점 중의 하나(one of them)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위치도 네이버 지도에서 ‘성심당 본점’이라고 기재된 지역이 아니라 그냥 ‘성심당’이라 기재된 지역에서 영업활동을 했습니다.
바로 그 ‘성심당’ 바로 옆의 ‘JS그린빌딩’이 위치했던 자리에는 지금은 이전한 ‘대전대흥침례교회’가 자리잡았습니다. JS그린빌딩은 교회를 철거하고 지은 건물입니다. 아무튼 그 교회에서 저는 나이롱신자로 3년을 다녔습니다. 교회를 다녔던 그 3년 기간에 성심당에서 만든 빵을 꽤나 많이 먹었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행사라도 있으면 거의 예외없이 성심당 빵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성심당 측에서는 대전대흥침례교회 신도가 일종의 단골인 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판촉 차원에서 무료로 빵을 많이 주기도 했습니다. 교회 신도들은 입을 모아 성심당 빵이 ‘신선해서’ 성심당 빵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야채나 과일이라면 몰라도 왜 빵이 신선한가 의아했습니다.
그 당시에 ‘신선한 빵’이라 불렸던 성심당 빵의 비결은 ‘당일 만들어서 당일 판매하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제과점 빵이라도 오래되면 뭔가 눅눅하고 찌든 맛이 드는 것이 보통인데, 성심당 빵은 뭔가 산뜻하고 뽀송뽀송하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슈퍼에서 파는 빵과 구분하여 제과점 빵은 맛이 더 좋기도 하거니와 값도 더 비싸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기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성심당 빵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남기고 오랜 기간 성심당 빵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진학에서 시작한 서울살이가 수십 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튀소’로 약칭이 되는 튀김소보루와 야채빵이 대전의 상징으로 등극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과거 제가 알던 성심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충격과 감동 등의 복합감정이 한참이나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곰곰이 성심당의 도약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빵이란 사람이 먹는 것인데, 결국 맛과 가격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 제일 예민한 것이 미각입니다. 미각에 어긋나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대전역점의 임대료 때문에 주무 장관과 대전시장이 움직인다는 뉴스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성심당의 급성장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1980년대초에 종이로 포장한 성심당 빵을 우걱우걱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