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경 이야기>
‘기시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데자 뷔(Déjà vu)’라고 하는데,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본 말일 것입니다. 어느 사물이나 사람을 전에 본 적이 있는 묘한 감정을 뜻합니다. 지금은 존재감이 없는 예전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오현경이 참가자로 등장했을 때, 바로 이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사람마다 인상이나 외형이 비슷한 사람이 존재하기도 하는데, 오현경은 제 친구의 여동생과 인상이 아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모는 단연 오현경이 압승이긴 하지만, 인상이 딱 제 친구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다른 미스코리아는 데면데면했어도 오현경은 묘한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관심인지 호감인지 정확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여성 연예인 중에서 유달리 오현경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생성되었고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존재감 자체가 거의 없는 것이 미스코리아대회지만, 오현경이 미스코리아에 당선될 무렵의 미스코리아의 위상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공중파방송국에서 생중계는 기본이었고, 그 생중계를 주로 진행하던 김동건 전 아나운서도 미스코리아를 ‘한국 최고 미인대회이자 연예계의 등용문’으로 추켜세웠습니다. 김동건 전 아나운서 자체가 고령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등용문’이라는 말도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었기에, 생방송의 기억이 오래전이었다는 확인사살을 하게 됩니다. ‘성상품화’라는 여성단체의 강력한 반발 외에도, 참가자가 대거 성형수술을 한 얼굴인지라 미스코리아대회의 존재가치가 의문이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그 시절의 미스코리아 입상자는 당연코스로 연예계에 입문을 했고, 오현경도 입상 직후부터 주연급 배우로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기도 승승장구를 했습니다. 오현경은 얼굴, 몸매, 그리고 연기도 모두 되는 배우였기에, 인기가 뜨거운 것이 마치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현경의 인기가 정상에서 약간 꺽일 무렵에 문제의 ‘비디오파문’이 생겼고,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님에도 오현경은 ‘죄인 아닌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서 오랜 기간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오현경이 마침내 복귀를 했을 때는 놀랍게도 네티즌은 물론 대중의 여론은 호의적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중이 분노하는 대상은 학폭이나 갑질 등 연예인의 지위를 남용하여 군림하는 것이거나 과거의 부적절한 행실이었지, 섹스비디오 등 사생활에 대하여는 의외로 쿨한 반응이 대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아무개 연예인이 누구랑 사귀었다, 하면 당연히 섹스를 한 것으로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실은 좋아하는 사이에 성관계를 갖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동입니다. 서양인들의 연애관 내지 가치관이 한국인들의 연애관에도 투영된 것입니다. 오현경 외에도 비디오 파문이 있었던 다른 여성 연예인 몇 명이 있었어도 대중의 절대다수는 전혀 문제를 삼지도 않는 것이 최근의 세태입니다.
오현경의 인생사를 보면, 연예계의 등용문으로서의 미스코리아대회의 위상의 급격한 변화부터 성형수술의 대중화 등의 일련의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연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예인에 대한 가십의 대상이 성생활 등 사생활이 아닌 갑질이나 학폭 등 공정의 영역으로 변화된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오랜 기간 응원했던 오현경이 다시금 인기를 누리는 것이 마냥 반갑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