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Das Boot’>
1982년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입니다. 그리고 그 해에 대전에서 중·고교를 다녔던 분들이라면, 바로 이 영화 ‘Das Boot’를 ‘학생단체관람영화’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날 것입니다. 그 시절, 대전에서는 중간, 기말고사 후에는 각급 중·고교에서 단체로 극장상영 영화를 보던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Das Boot’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그 이후에 무려 10번 이상 보고 또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우선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Das Boot’는 독일어입니다. 한글로는 ‘다스 보트’라 읽는데, ‘Das’는 영어의 중성 정관사 ‘The’에 상응합니다. 독일어는 정관사에 성별이 붙어서, 여성(die), 남성(der), 그리고 중성의 정관사(das)가 있습니다. 그리고 명사는 대문자로 쓰는데, ‘Boot’는 영어의 ‘boat’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The Boat’가 원제인 셈입니다. 아무튼 ‘Das Boot’는 영어가 원제가 아닌 죄(?)로 ‘특전 유보트’, ‘유보트’, ‘우보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방송에서는 일관되게 ‘(특전) 유보트’라 불렸습니다.
이 영화에 깊은 매력을 느낀 것은 제2차 대전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영화가 일치단결하여 ‘미국만세’를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저는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미국만세’를 부르는 것에, 마치 육자배기도 질리는 것처럼, 싫증이 났습니다. 소박한 시민들에게도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그리고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대전은 독일 청년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고 또한 이들도 반전의식이 뚜렷했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히틀러의 광기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왜 미군만 정의롭고, 미군이 쏘는 총과 대포에 의하여 독일 청년이 죽어나갈 때마다 쾌감을 느껴야 하는지 무척이나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생소한 독일군의 생생한 잠수함 내부에서의 사투에 녹아들어 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PSZECLl3s
‘Das Boot’의 강점은 리얼리티입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전쟁의 긴박감을 OST로 돋구는 장면 하나, 하나가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당시의 영화평도 전쟁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그린 대목을 높이 평가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봐도 ‘Das Boot’의 리얼리티는 최고입니다. 이후 무수히 많은 헐리우드영화가 이 영화의 플롯의 전개와 촬영기법을 따라 했으며, 볼프강 페터슨 감독도 덩달아 헐리우드까지 진출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의 전쟁영화는 대부분 육전이거나 공중전이 주였고, 깊은 바다 밑의 생생한 전투상황을 밀도높게 그린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바다에서는 절대강자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구축함을 만나면 긴장하는 선원의 모습, 그리고 바닷속을 누비는 폭뢰의 공포에 떠는 선원의 모습은 전쟁영화가 구비하여야 할 리얼리티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당시 잠수함은 배터리 충전시간 때문에, 스노클링, 즉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필수적 운항이라는 과학적 지식은 덤이었습니다.
‘Das Boot’가 구현한 리얼리티의 극치는 단연 지블롤터해협을 건너는 장면과 수심 200M에 근접하는 장면에서 선원들이 죽음을 넘나드는 장면입니다. 카메라는 잠수함의 외부를 무심하게 그리고 있지만, 카메라가 다시 잠수함 내부로 이동하면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대조적인 장면 하나, 하나를 생생하게 그리면서 단지 시각효과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항해를 마치고 무사귀환의 직전에 미군의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그리는 반전메시지의 압권입니다. 생과 사는 찰나의 시간에 갈리며, 승자와 패자는 순간의 사건임을 선명하게 제시하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허무하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Das Boot’의 상업적 성공의 나비효과로 나시찬, 그리고 강민호 주연의 ‘전우’ 등 한국 전쟁드라마나 전쟁영화의 동력이 상실되는 기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3840유격대’가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들 드라마들이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총싸움’ 수준의 드라마라는 것을 시청자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랜 기간 한국에서는 전쟁드라마나 전쟁영화가 실종이 되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태극기를 휘날리며’나 ‘고지전’에 이르러 비로소 전쟁영화다운 전쟁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Das Boot’가 구현한 리얼리티와 퀄리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질적 저하가 된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Das Boot’의 가치가 먼 이역만리에서 엉뚱하게 빛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