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태권브이와 마징가제트>
1970 ~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지겹도록 들었을 말이 있습니다. ‘(로보트)태권브이와 마징가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로 어린이들 간에 뜨거운 논쟁이었지만, 간혹 어른들도 참여하는 주제였습니다. 나중에는 태권브이가 한국이고 마징가제트는 일본이라는 설정으로 졸지에 ‘한·일전’으로 격상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태권브이가 마징가제트의 표절이라는 논쟁도 더해졌고, 태권브이의 감독인 김청기의 표절 이력까지 더해져서 태권브이 문제는 논쟁의 근원지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태권브이에 열광했던 올드보이들도 그 추억이 희미해질 무렵, 서울중앙지법은 태권브이의 표절에 대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올드보이들은 뇌수에서 잊혀져가던 태권브이의 향수를 꺼냈습니다. 태권브이 기사는 다음의 ‘한겨레’는 물론 ‘조선일보’에서도 비중있게 서술되었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태권브이의 괴력이었습니다. 그리고 판결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의외로 비판적이라는 점도 대동단결했습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이광영 부장판사는 ㈜로보트태권브이가 “저작권을 침해받았다”며 완구류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ㄱ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4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로보트태권브이는 만화 캐릭터 태권브이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재판부는 태권브이의 캐릭터를 함부로 사용한 ㄱ씨가 태권브이 저작권을 가진 ㈜로보트태권브이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본 겁니다.
<한겨레 2018. 8. 1. 기사>
법원은 태권브이가 외형 자체가 다르기에 표절이 아니라도 판시했습니다. 네티즌은 반발했습니다. 외관이 유사한 것은 물론 로봇의 기능도 유사한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로봇의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서 조종한다는 발상부터 유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쯤에서 표절로 인정하는 것이 대세일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 시절의 메카로봇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메카로봇은 일본식영어를 의미하는 재플리시입니다. TV를 ‘테레비’라 부르는 것을 연상하면 됩니다. 영어의 mechanic을 일본식 발음인 메카니쿠(メカニック)로 부르면서 ‘사람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로봇’을 ‘메카로봇’이라 부르면서 그 개념이 출발하였습니다. 마징가제트는 그 선구자격인 로봇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랜다이저, 그레이트 마징가 등 무수히 많은 메카로봇이 활약했습니다. 변형물로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로봇도 메카로봇으로 분류했습니다.
메카로봇이 왜 중요하냐면, 바로 메카로봇의 원형(原形)이 인체의 형상을 닮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마징가제트는 메카로봇의 표준 내지 원형의 로봇입니다. 그랜다이저나 강가(짱가), 건담, 마크로스, 그레이트 마징가, 볼트론 등 무수히 많은 메카로봇은 모두 투구를 두른 중세 장군의 외형을 기초로 제작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모두 마징가제트의 파생형에 해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잠시 애플의 아이폰과 갤럭시폰 그리고 중국의 화웨이나 샤오미 등 무수히 많은 스마트폰의 외형을 생각해 봅니다. 스마트폰의 원형 자체는 아이폰이 원조지만, 나머지 스마트폰은 좋든 싫든 그 원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메카로봇으로 돌아갑니다. 메카로봇의 발상은 ‘선과 악’의 진영대결을 전제로 ‘선 진영’, 즉 인간과 그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로봇이 ‘악 진영’인 악당로봇과 싸운다는 설정입니다. 메카로봇의 인간의 외형을 구비하는 것은 플롯의 전개를 위하여 쉽게 도출이 되는 플롯의 흐름입니다. 마징가제트는 바로 이 메카로봇의 원형을 구축한 캐릭터입니다. 그 이후의 메카로봇은 좋든 싫든 마징가제트의 캐릭터를 수용해야 합니다. 메카로봇은 로봇만화의 하나의 장르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마치 음악장르에서 동일한 장르의 곡은 유사한 코드전개가 이루어지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만화캐릭터는 그 자체보다 캐릭터상품으로 상업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특허법원의 판결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 판결은 ‘로보트태권브이’는 저작물로 인정이 되더라도 상표로서는 부정하였습니다. 만화영화로 대박을 쳤지만, 필연적으로 상표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판결입니다. 미키마우스는 그래서 디즈니가 만화캐릭터로 뜨자 상표로 활용하여 엄청난 캐릭터상품으로 활용했습니다. 로보트태권브이는 슬프게도 사채광고 등에서만 활약을 했습니다. 후속 만화영화의 제작은커녕 캐릭터상품의 구축도 실패했습니다. 그 시절 태권브이에 열광했던 7080세대들에게 비수를 꼽는 행위입니다.
저명한 저작물에 등장하는 이른바 캐릭터(character) 또는 그 명칭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객흡인력 때문에 이를 상품에 이용하는 상품화(이른바 캐릭터 머천다이징; character merchandising)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와 같은 경우에는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거나 품질보증기능을 하는 등 상표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이 캐릭터 또는 그 명칭이 상품화 사업을 통하여 상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캐릭터 자체가 저명하다 하여 상표적으로 사용된 표장 자체가 바로 그 캐릭터에 관한 상품화사업을 영위하는 특정 집단(group)의 상품표지로서 수요자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다거나, 그 상품이나 상표라고 하면 그 특정 집단의 상품이나 상표라고 인식될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캐릭터 또는 그 명칭이 상품화되어 주지·저명한 상표 또는 특정인의 상품이나 상표로서 인식될 정도에 이른 상표라고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캐릭터 자체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캐릭터 상품의 판매실적, 상품의 공급기간, 영업활동의 기간, 방법, 태양 및 거래범위 등을 종합하여 거래실정 또는 사회통념상 객관적으로 상표로서 널리 알려져 있느냐의 여부 등을 종합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한다.
(특허법원 2003. 8. 14. 선고 2003허202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