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은 왜 사극의 주연을 그리도 많이 했을까?>
인터넷에 ‘이봉원’을 검색하면 개그맨 이봉원에 대한 결과만 우르르 쏟아집니다. 이봉원, 그리고 그 부인 박미선이 워낙 유명인인지라 동명이인의 비애를 감내해야 하는 다른 이봉원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이봉원은 이미 고인이 된 분입니다. 이 분은 KBS공채 1기로 KBS에서 정년퇴직을 한 분으로, KBS사극의 무대 등 셋트를 설치하는 KBS의 자회사인 KBS아트비전의 사장을 지낸 분입니다. KBS의 산증인이었던 분이며, KBS의 올드보이거나 고참급 배우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분입니다. 예전에 KBS 연말 연예수상 프로그램에서 KBS를 대표하여 수상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생같은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전에 제가 늘상 ‘아버님’이라 불렀습니다.
최수종을 말하면서 왜 이봉원 전 사장을 언급하는지 의아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봉원 전 사장의 생전에 제가 왜 최수종이 줄기차게 KBS의 대하사극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는가를 여쭤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왜 최수종은 그렇게나 KBS의 대하사극의 주인공으로 마르고 닳도록 캐스팅이 됩니까?
그야 (캐스팅) 할 만하니까 캐스팅하는 거지.
KBS의 산증인이었던 분답게 연기로만 보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배우들의 실제 사생활, 연기에 임하는 자세, 동료 선후배들과의 관계 등에 대하여 정통한 분인지라, 너무나 쉽게 말을 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특이하게도 KBS의 특성과 그에 따른 최수종의 캐스팅에 대하여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생전에 이봉원 전 사장의 멘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KBS가 국영방송에서 출발했기에, ‘공무원 마인드’가 직원들의 DNA에 내재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지금도 KBS는 공무원 마인드가 체질화 되었습니다. 슈퍼갑 시절의 DNA가 가미되어서인지 고압적인 태도가 몸에 베었다고 비판도 받습니다. 특히 방송국 외주업체 중에서 KBS의 갑질이라면 학을 뗀다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강자 앞에서는 ‘작아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역대 KBS 사장은 모두 청와대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선을 했습니다. 이봉원 전 사장은 이러한 일련의 사실에 더하여 KBS는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책임에 민감하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제 고교 동문이자 KBS PD협회장을 지낸 현직 KBS의 고찬수 PD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KBS의 이러한 구조적 성격은 필연적으로 사장 이하 KBS 경영진에게 대하드라마로 제작되는 사극의 캐스팅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배우로 캐스팅을 하고 사극의 플롯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가령,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했을 때, ‘개국’이라는 대하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 이것은 전두환 신군부의 출범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의미라는 설명을 부가했습니다. 아침드라마나 미니시리즈는 제작진의 자율성을 보장하더라도 대하드라마 사극의 경우에는 KBS 사장이 캐스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사극은 일반드라마보다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듭니다. 게다가 대하드라마인 경우는 차원이 다릅니다. 최근 방송국의 경영사정이 어려워서 대하드라마 사극이 실종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연배우가 스캔들이나 범죄 등에 연루되면 방송국의 금전적 손실은 엄청납니다. KBS는 거기에 더하여 감사와 책임까지 이어집니다. KBS이사회, 감사, 국회의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 첩첩산중인 KBS 시어머니들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청와대는 아예 KBS 사장의 목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빵’으로 캐스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봉원 전 사장은 담담히 설명했습니다.
최수종은 그런 점에서 최적의 카드였다고 그 설명은 이어졌습니다. 동료, 선후배와 두루 원만한 인간관계, 부인에게 헌신적이고 꽃미남 주연배우임에도 여성스캔들이 없는 점, 연기에 진지하고 꾸준히 자기개발을 하는 점 등을 나열하면서 최수종을 당시 KBS 경영진이 캐스팅한 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보수적인 KBS 경영진이 새로운 인물을 캐스팅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책임소재 때문에 최수종을 그대로 밀어붙인 점 등 언론에서는 기사화 된 적이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줬습니다. 결론은 인성, 연기력, 인간관계 등에서 두루 무난하고, KBS 경영진의 구조적 속성이 더해져서 최수종의 사극 신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직 무술감독이자 오랜 기간 제가 법률자문을 한 김태득 감독은 새로운 사실로 최수종을 치켜세웁니다. 대하드라마인 사극은 거의 무술연기자가 필요하기에, 무술감독인 그는 최수종과 같이 사극의 주인공과는 필연적으로 궁합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간됨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종이형은 한마디로 편해요. 주연급 배우는 까탈스럽거나 이런저런 갑질을 스탭이나 무술연기자, 그리고 단역배우에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수종이형은 우리에게도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죠. 이 바닥에서 인성이 문제가 된 배우들은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지요. 최수종이 그렇게나 오래 배우생활을 한 것은 인성에도 문제가 없기에 가능한 겁니다.
이봉원 전 사장의 설명을 듣고 최수종을 달리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최수종은 음주, 마약, 사생활 등에서 잡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학력위조 사건에서도 외국어대를 입학한 사실 자체는 존재하나 집안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했다는 사실로 반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과연 최수종은 국민배우가 맞다는 확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