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이야기거리

<이범수, 그리고 ‘슈퍼스타 감사용’>

방랑시인 2025. 4. 18. 22:23
728x90
반응형

원로 아나운서 이계진 전 아나운서도 선생님으로 부르는 그야말로 원로 중의 원로 아나운서 고 황우겸 아나운서는 원조 스포츠캐스터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황우겸 선생님을 뵌 적이 있는데, 스포츠캐스터의 고충을 실감나게 말씀해주던 것이 생생합니다. 이 분이 강조한 멘트가 각본 없는 드라마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매 순간 긴박하게 돌아가는 스포츠야말로 그 어느 영화나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기에, 스포츠캐스터에게도 긴장의 연속이라는 점을 실감나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유명 스포츠캐스터치고 바로 이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멘트를 하지 않은 분이 없을 정도로 스포츠의 묘미는 예측할 수 없는 승부의 순간입니다. 승부를 예측할 수 있다면 각본이 있는 드라마겠지만, 그런 드라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잔인하게도 패자와 승자를 필연적으로 가릅니다. 승자는 환희에 젖지만, 패자는 좌절에 빠집니다. 인간에게는 승부DNA가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사소한 내기게임에도 지면 분기탱천합니다. 반대로 이기면 그렇게나 통쾌할 수 없습니다. 프로스포츠선수들에게는 매일 매일 승부의 세계가 펼쳐지기에 승패에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승패가 가져오는 고통과 환희라는 감정의 변이는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제 이겨서 오늘 패하더라도 덤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제는 이겼더라도 오늘 패하면 분노와 좌절을 느낍니다. 승부DNA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프로스포츠선수들은 어쩌면 매 경기마다 잔인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승부라는 것의 절절한 의미를 적확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화제성에 비하여 흥행 자체는 실패했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의 쓰라림과 승리에 대한 갈망이 스포츠선수, 나아가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한 작품입니다. 특히 슈퍼스타 감사용을 연기한 이범수의 딱 한 번만이라도 이기도 싶었다.’고 펑펑 울면서 절규하는 장면은, 제 개인적으로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입니다. 이범수의 인생연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장면을 무수히 반복해 볼 때마다 매번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yTyN_QQs

 

 

스포츠는 상투적으로 인생에 비유됩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성공한 인생처럼 S급선수로서 승승장구를 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입에 겨우 풀칠하는 찌질한 인생처럼 후보를 전전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감사용은 체구도 작고 스피드나 제구력, 구위 등 프로야구 원년처럼 선수풀이 적은 시대가 아니라면 프로에 지명되기 어려운 선수입니다. 좌완이라는 희소성으로 프로야구선수가 되었기에, 실은 행운의 선수라 보는 것이 맞습니다. 통산성적도 단 1승에 불과한 선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있습니다. 그렇게 후보급의 선수일지라도 승부욕은 동등하다는 점을 이 영화는 그리고 있습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지만, 승부의 과정 자체는 모두 동등합니다. 이루기 어렵더라도 시지프의 신화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환기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동화합니다. 감사용이 됩니다. 그리고 감사용으로 분한 관객은 이기고 싶은 마음을 공유합니다. 패배로 귀결되면서 좌절의 눈물을 흘립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평범한 시민을 감사용으로 동화시켜서 끝까지 동행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담겨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8izCF_pQ4M

 

 

현실 속의 감사용은 프로야구단의 그저그런 투수라는 이력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마트에서의 잡일과 유소년팀의 야구지도를 병행합니다. 프로야구 감독은 고사하고 유명 대학이나 고교의 야구감독도 아님에도 그 옛날 삼미슈퍼스타즈의 땜방투수처럼 주어진 일에 충실합니다. 대다수의 시민은 감사용입니다. 실은 감사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 속의 성공의 과실은 소수만이 쟁취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 실패자에게도 생존의 기회를 부여하고 또한 생존의 가치도 존재합니다. 승자만을 위해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