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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 이야기>
    7080 이야기거리 2021. 6. 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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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필은 기호입니다. 글씨가 되었던, 그림이 되었던 그 형태를 불문하고 사람이 연필로 창조한 것은 모두 의미를 전달하려는 기호입니다. 자아와 타아를 향한 서로 다른 자아들의 기호는 연필로 구체화됩니다. 말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정열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찰나의 감동일 뿐입니다. 연필로 구체화된 기호는 천년을 가고, 만년을 갑니다. 플라톤이 평생을 그리던 그 이데아의 세계를 연필로 적힌 기호를 통하여 수천 년이 지난 후손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필은 단순한 사물을 넘어 문명사회의 축적이요, 지식의 전달체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연필은 고와 금, 그리고 동과 서가 공유하는 장을 의미하기도 하며, 사회를 통합하는 매개장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연필은 추억입니다. 연필은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하여 쓰는 보조기억장치를 넘어 신기한 요술입니다. 연필로 썼던 그 낙서로 우리는 닫혔던 과거라는 공간속에 뽀얀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푹 묻혀있던 추억을 꺼낼 수 있습니다. 만남에서부터 이별까지 존재했던 아픔과 눈물, 그리고 웃음과 환희를 고스란히 꺼낼 수 있습니다. 분위기에 취하고 흥겨움에 취했던 먼 시간속의 공간이 함초롬히 되살아납니다. 남이 볼까 두려워 얼른 지우고 싶었던 순간도 되살아납니다. 작가 정비석은 ‘산정무한’에서 거울의 의미를 이 세상의 비극이 시작된 이유로 풀이합니다. 그러나 거울은 자아의 잘못을 잡아주는 균형추이기도 합니다. 남을 속이려 거짓으로 만들었던 그림도 자아의 깊은 심연에 있었던 양심의 거울에 비추면 모든 것들이 되살아납니다. 아무라 연필로 지우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직도 살만한 것은 거울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연필은 대화입니다. 연필로 살렸던 추억은 단지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추억과 대화를 합니다. 추억은 언제나 감미롭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새벽부터 황혼이 있듯이 인생살이에는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공유한 공간이 있습니다. 연필로 써내려간 추억은 우리와 끊임없이 정다운 대화를 합니다. 막상 닥칠 때는 한없이 가혹한 고통이지만, 연필이라는 도구의 도움을 받아 치환한 추억은 고통과 아픔도 아름다움으로 변신을 하곤 합니다. 환희뿐만이 아니라, 고통도 아름다움일수 있다는 이치를 연필의 가르침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연필은 부름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그러나 이름은 단지 석자로 표기되는 이름만을 의미하지 아니합니다. 이름의 주인이 남긴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입니다. 인생이 남기는 발자취는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연필로 기록이 되며, 타아의 냉엄한 평판의 대상이 됩니다. 생전에 조광조를 제압한 남곤의 기상은 후세에 역전이 됩니다. 조광조의 원루(寃淚)는 후세의 내정한 평가를 받아 신원(伸寃)을 넘어 공정한 역사가 됩니다. 연필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가교가 됩니다. 미래의 비원을 잇는 부름이 됩니다. 현재에만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미래의 안락과 평온을 그리는 부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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