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진섭의 이 노래 : ‘희망사항’>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4. 11. 6. 15:14728x90반응형
요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 7080시대에는 남녀 간의 ‘1대1모임’은 ‘소개팅’, ‘다대다 모임’은 ‘미팅’이라 불렀습니다. 미팅이나 소개팅은 고교생들에게도 유행했지만, 아무래도 대학 새내기들의 통과의례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유행하였습니다. 실은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면서 대학생이 된 것을 자각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신입생은 아니고 재학생이던 어느 날, 당시 신림동 하숙집 후배가 주선하는 소개팅이 있었습니다. 당초에는 제가 간다고 하다가 일정 때문에 대전 고향 친구이자 하숙집 룸메이트(박창기! 네 얘기다!)가 대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개팅이 대박이었습니다. 그 소개팅의 상대방이었던 이화여대 여학생 측 주선자가 바로 노영심이었습니다. 제 친구(룸메이트이자 소개팅 참석자)가 전하기를, 노영심은 나름 유명한 연예인임에도 전혀 연예인같지 않고 수수하니 선한 인상에 너무나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노영심은 주선자이며 소개팅의 상대방에 불과했음에도 노영심이 워낙 거물(!)인지라 노영심에 정신이 팔렸다고 합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노영심이 이화여대 출신(그 유명한 ‘이대 출신!’)임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튼 노영심에 대한 칭찬에 저는 분기가 탱천해서 ‘후일’을 기원했지만, 기대한 ‘후일’은 영영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를 기준으로도 대히트한 노래가 노영심이 작곡한 이 노래 ‘희망사항’입니다. 그래서 ‘희망사항’이라는 노래만 들으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그때 놓친 고기(노영심)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노영심이 이 글을 읽으면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배꼽을 쥐고 웃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tdWkVeQXOg
이제 ‘희망사항’으로 돌아옵니다. 당시는 변진섭이 ‘발라드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던 때였습니다. 기존의 그 엄청난 인기에 재차 불을 붙인 것이 노영심이 작곡한 바로 이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사실 노래 자체는 대단한 기교가 있다거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희망사항’의 진가는 이성에 대한 진솔한 바램을 풀어놓은 가사에 있습니다. 요즘은 ‘자기 객관화’라고 보통 표기를 하는데, 그 시절은 ‘주제파악’이라 부르면서 자기의 분수와 무관하게 바라는 이상향을 ‘희망사항’이라 불렀습니다. 일방적인 바람을 일상에서 ‘희망사항’이라고 불렀던 그 시절의 언어용례가 마침내 유행가로까지 재탄생된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사항’이라는 제목부터 위트와 풍자가 섞여 있어서 웃음을 지어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면 ‘희망사항’, 즉 이상형에 근접한 이성을 고대했습니다. 아무래도 유교에 억눌린 분위기를 당당하게 부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미팅이나 소개팅이다보니 기대치가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내 입맛(!)에 맞는 이성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내 입맛에 맞는 떡(?)은 남의 입맛에도 맞기 마련입니다. 이미 경쟁력이 출중한 상위포식자가 쟁취한 상태가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도 기대는 대부분 실망으로 끝났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플랜B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일부 용감한 축들은 ‘헌팅’을 통하여 이상형을 쟁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대쉬를 했습니다. 그 시절이 지금보다 딱 하나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열 번을 찍어도 된다!’라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서양 속담이 한국식으로 변용된 분위기가 미녀에게 돌진을 허용하는 것이 그 시절의 풍습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스토커로 처벌을 받지만, 그 시절은 ‘용감함’을 허용하는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일본에서 유행(?)하다 한국으로 넘어온 것 중에서 ‘초식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초식남이 유행하게 된 경위는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迷惑, めいわく) 문화’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혐오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 남성이 고백을 하는 것에 대하여 혐오를 넘어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이 많아서 차라리 솔로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싱글남 사이에서 하나의 관습으로 축적된 것이 초식남입니다. 일부 미혼여성을 중심으로 ‘고백공격’을 호소하고, 나아가 스토킹범죄의 심각함을 호소하면서, 그 변증법적 귀결로 한국의 미혼남성들이 급속도로 초식남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N포시대’라는 낙인을 무시하고 싶어도 각종 커뮤니티를 보더라도 젠더갈등이 이제 대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시절보다 더 멀어진 ‘희망사항’이 아니길 빕니다.
728x90반응형'7080 가수 > 7080 남자가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인권의 이 노래 : ‘돌고 돌고 돌고’> (2) 2024.11.09 <송골매의 이 노래 : ‘오해’> (5) 2024.11.08 <조영남의 이 노래 : ‘화개장터’> (12) 2024.09.22 <풍운아 가수, 박일남> (3) 2024.09.03 <김태곤의 이 노래 : ‘나는 혼자였네’> (0) 202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