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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진섭의 이 노래 : ‘새들처럼’>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5. 3. 3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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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오래전에 TV에 출연해서 문학작품 창작의 어려움과 작가정신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권영민 교수가 주장한 요지는, 작가들 중에서 작가정신이 부족해서 데뷔작이 대표작인 작가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들은 치열한 작가정신을 포기한 채 창작의 열정을 내려놓고 작품의 개발에 소홀히 한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정신의 부족인지 아니면 재능의 부족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판단의 잣대도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들의 항변도 들어봐야 합니다.

     

    직가가 기존 작품의 주제나 플롯을 배제한 전혀 다른 유형의 작품을 집필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습니다. 작품이란 작가의 인생관과 철학이 베어나오기 마련인데,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갖고 새로운 소재를 조합하여 작품을 집필하는 것은 실은 작가 자체를 전면개조하는 것이기에 극한의 난이도가 전제되며, 설사 작품을 창작한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호응이 이어질지는 신의 판단영역이라는 것이 작가들의 항변입니다. 악마의 재주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이문열도 창작은 피를 말리고 뼈를 깍는 고통이라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권영민 교수의 비판과 작가들의 항변을 두고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는 창작의 영역이라는 측면에서 비단 문학만이 처한 현실은 아니며, 대중가요 등 대중예술 전반에 걸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딜레마는 자기복제(self-replication)라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술의 영역에서는 창작자의 신념 내지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인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창작자의 정체성과 연계되기에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이미 대중의 선호를 확인한 시점에서 새로운 창작으로 모험의 길을 가기보다는 안전빵을 선택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가장 유용한 길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유로팝의 대명사로 불렸던 모던 토킹의 일련의 발표곡이 자기복제의 대명사격입니다. 그들이 발표한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Brother Louie’, ‘Cheri Cheri Lady’, ‘Atlantis Is Calling’ 등은 곡의 코드전개가 대동소이한 곡입니다. 음악평론가 중에서 심한 경우는 이들 곡들은 모두 동일한 곡이라 독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마이클 잭슨의 경우에는 ‘Beat it’부터 ‘Black or White’까지 디스코 리듬으로 일관했으면서도 곡의 코드전개는 모두 달랐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로 군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은 모두 인트로가 산뜻하면서도 기발합니다. 신선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마이클 잭슨이 죽기 전 10년 내내 신곡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명성을 채워줄 만한 곡이 아니라면 차라리 발표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구축한 이미지와도 부합하지 않다면 차라리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인기와 명성을 유지한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수에게 이미지란 이렇게 팝의 황제에게도 소중한 가치입니다.

     

    이렇게 구축된 이미지를 고수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자기복제의 강렬한 유혹과 변화를 도모하는 가수의 도전정신이라는 상반된 가치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히트의 가능성은 그 열쇠가 될 수는 있습니다. 인기가수들 중에서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와 컨셉을 내세워서 거부한 노래가 다른 가수에게 돌아가거나 작곡자에게 돌아가서 대박이 난 노래는 팝송은 물론 국내가요에서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거부를 해서 이미지를 보호한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정답이 없다는 실증적인 반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라드곡으로 일관한 변진섭의 사례는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증명하는 사례이기에, 흥미를 불어넣습니다.

     

    이범희 작곡의 발라드곡들에서 차별점이 있기는 하나, 1980년대 중반까지는 발라드곡들에도 트로트풍, 일명 뽕끼가 가득한 것이 국내가요의 현실이었습니다. 가령, 1980년대 중반에 발라드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김범룡의 일련의 곡에는 트로트가 잔뜩 묻었습니다. 트로트발라드곡이었습니다. 현재 그는 가수보다는 트로트곡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변신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을 석권한 이문세의 뒤를 이은 변진섭은 1990년대초까지 발라드의 대세를 이뤘습니다. 곡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가사도 서정시 그 자체였습니다. 반주에도 미니 클래식 악단을 동원하여 고급지고 세련된 음악을 연출하였습니다. 대중가요의 클래식화를 추구했습니다.

     

    열린 공간 속을 가르며 달려가는

    석양에 비추인 사람들

    어둠은 내려와 도시를 감싸고

    나는 노래하네

    눈을 떠보면

    회색빛 빌딩 사이로 보이는 내 모습이

    퍼붓는 소나기

    세찬 바람 맞고 거리를 헤매이네

     

    https://www.youtube.com/watch?v=ZEBCpHlcxO4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고급진 변진섭의 발라드곡의 대표곡인 새들처럼은 여전히 아름다운 곡과 유려한 가사가 빛이 납니다. 변진섭은 발라드 신곡들을 발표하는 족족 대박이 났습니다. 실은 노래와 가수의 역량을 고려하면 대박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자기복제까지는 아니라도 유사한 곡의 전개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싫증이라는 괴물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서태지와 김건모의 등장, 그리고 발라드 라이벌인 신승훈의 급부상으로 변진섭의 존재는 빛의 속도로 잊혀졌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최진실과의 무한밀땅에 팬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진 인기는 회복이 어렵다는 대중가수의 인기법칙에 변진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변진섭은 흘러간 가수를 넘어 원로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기는 가더라도 추억은 남는 법입니다. 변진섭의 새들처럼을 다시 들어보면 역시 명곡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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