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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국민’학교의 시험>
    7080 이야기거리 2022. 8. 1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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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은 교육과정의 필연적 과정입니다. 교육의 내용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였나 확인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확인이 없다면 교육은 부실덩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입시나 자격증의 부여를 위한 장치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만, 시험이라는 것의 유래가 만국에 공통적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시험이라는 형태를 찾을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은 그런 속성이 있기에 꼭 피하고 싶거나 설마 이런 것을 내겠냐 하는 예상을 벗어나는 비정함(!)이 있습니다. 우열을 가려야 한다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이후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시험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학교다운 모습을 갖춘 1960년대 국민학교 시절에 시험다운 시험의 풍경이 확립되었습니다. 시험은 당연히 시험지에서 출발합니다. 그 시절 전체가 아날로그시대였기에, 당연히 그 시절의 시험지도 아날로그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의 인쇄된 시험지와 OMR카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철필로 원지(原紙)라 불렸던 푸르딩딩한 파라핀용지에 출제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쓰는 것으로 당시 시험지는 출발했습니다. 원지에 철필로 글자를 쓰면 그 원지에는 글자 형태를 따라 홈이 생깁니다. 그 홈을 롤러로 밀면 홈에는 잉크가 투과되지만, 홈이 없는 자리에는 파라핀이 있기에 잉크가 불투과되는 원리로 시험지가 완성이 됩니다. 그 원지를 투과한 잉크가 시험용지에 달라붙어 글자와 기호를 완성합니다. 한 장씩 그 많은 시험용지에 잉크를 묻히는 작업은 지금은 사어가 된 소사(小使) 또는 용인(用人)이라 불리는 학교직원이 담당했습니다. 그분들은 학생은 물론 교사로부터 하대를 받는 분들이었지만, 그분들이 없으면 시험은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공무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분들입니다.

     

    1970년대 대도시는 이부제수업이 일상화된 시대였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려면 엄청난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시험지를 만든다는 것은 중노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지 제작은 유성잉크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시험지를 만드는 사람은 유성잉크에서 발산되는 석유 비스므레한 냄새를 맡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시험지의 제작은 계단 사이 좁은 공간이나 숙직실 옆의 좁은 공간을 작업실로 두고 행해졌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그 많은 시험지를 만들고 게다가 시험지에 묻은 잉크를 말리느라 고열을 감내했던 그 작업은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모두 시험 그 자체에 두려움을 갖지 시험지를 만드는 분들의 고통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파라핀으로 만든 원지는 무수히 잉크 묻힌 롤러의 반복동작에 그냥 무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잉크가 골고루 묻지 못해 인쇄상태가 조악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험 도중에 꼭 문제를 다시 묻는 해프닝이 생기곤 했습니다. 때로는 잉크가 완전히 마르지 않아서 시험을 보다가 시커먼 잉크가 손에 묻곤 했습니다.

     

    이렇게 시험지를 만드는 과정도 시험을 치르는 과정도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나 어렵사리 시험지를 만들어서 그런지 그 시절 선생님들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국민학교 시험결과는 평생 가는 것이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험성적은 주로 진학이나 취업과정에서 쓰이기는 하는데, 대학이나 고교 등 최종학력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국민학교 성적은 그 누구도 관심이 없기 마련입니다. 실은 죽마고우가 아닌 이상 절친이라도 어느 국민학교 출신인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의 대화는 과거의 무용담이나 고생담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라도 시험이 대화의 소재가 되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뭅니다. 시험성적이라는 복병이 있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험의 고생담은 꺼려집니다. 학창시절 가장 불꽃을 태운 것이 시험이지만, 지나고나면 까마득히 잊어지는 비련의 주인공이 시험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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