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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남의 이 노래 : ‘엽전 열 닷냥’>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4. 8. 5. 11:47728x90반응형
초등학교 5학년(물론 저는 ‘국민’학교 출신입니다) 봄소풍 때의 일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캔맥주를 드시던 당시 담임 선생님이 불콰한 얼굴로 갑자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를 기준으로도 ‘많이 흘러간 노래’인 한복남의 ‘엽전 열 닷냥’을 불렀습니다. 듣자마자 찌리리 감전이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친이 술에 취하면 부르던 노래가 바로 ‘엽전 열 닷냥’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네 어른들과 대폿집에서 알딸딸하게 마시다가 젓가락에 장단을 맞춰 부르던 바로 그 노래! ‘엽전 열 닷냥’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한복남은 일제강점기에 데뷔를 한 분입니다. 그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195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도 가끔 공중파의 무대에서 그가 부르던 ‘빈대떡 신사’입니다. 당연히 그 시대를 기준으로도 ‘원로’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엽전 열 닷냥’은 ‘빈대떡 신사’의 시대적 배경보다 더 오래된 조선시대이며, 그 소재는 요즘에는 상상 자체가 어려운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의 청운입니다. 진정 복고주의자(!)의 끝판왕입니다. 1970년대 힙한 젊은이들은 생맥주와 통기타, 그리고 포크송이 기본무장이었습니다. 한복남과 같은 원로 가수들은 그 시대를 기준으로도 젊은이들이 따라부르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대학생들이 남인수의 ‘청춘고백’을 부르는 장면이 있지만, 그 시대에는 이례적인 일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팝송 아니면 포크송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yyeprGcMlM
아무튼 담임 선생님이 불렀던 ‘엽전 열 닷냥’의 인상이 강렬해서인지 저도 그냥 흥얼흥얼 부르곤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친구들과 어쩌다 노래방에 갈 때, 무심코 바로 이 ‘엽전 열 닷냥’을 부를 때면 친구들이 가가대소 웃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나 노땅의 노래를 부르냐는 야유가 묻는 웃음입니다. 실은 ‘엽전 열 닷냥’ 외에 선친이 불콰하면 부르던 ‘비 내리는 고모령’, ‘백마강’, 그리고 ‘선창’도 종종 불렀습니다. 그렇게나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스르르 났기 때문입니다.
한복남은 이렇게나 오래된 가수입니다. 당연히 한복남이라는 이름 자체가 대부분의 MZ에게는 조선시대 무명의 정승, 판서마냥 생소하고 낯선 이름입니다. 그런데 한복남은 작곡에도 능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작곡한 노래 중에서 증손녀뻘 되는 송가인이 리메이크를 해서 히트한 노래가 있으니 바로 ‘처녀 뱃사공’입니다. 1970년대 ‘금과 은’이 불러서 대박이 난 노래인데, 그 ‘금과 은’이 부르기 전에 황정자라는 가수가 부른 곡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리메이크곡을 또다시 송가인이 리메이크한 셈입니다. 상업성만 확인이 된다면 얼마든지 대중가요의 생명력은 연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처녀 뱃사공’을 비롯하여 ‘한 많은 대동강’, ‘백마강’, 그리고 ‘오동통타령’ 등 아직도 탑골공원의 노인들이나 전국의 경로당 노인들이 젊어서 신나게 불렀을 법한 노래들도 모두 한복남이 작곡한 곡입니다. 내놓고 재주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복남은 ‘원점’의 작곡가 이호섭과 마찬가지로 재담도 빼어난 분이었습니다. 느릿하면서도 구수한 입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나저나 한복남이 고인이 된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세월이 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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