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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대영’을 아시나요?>
    7080 이야기거리 2024. 10. 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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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선수는 야구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 펑고 치고 싶다!

     

    위 어록은 야구판의 풍운아 고 조성민의 것이고, 아래 어록은 야신 김성근 감독의 것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야구인이라면 야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의미입니다. 똑같은 장면은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최강야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원없이 공을 던져봤던 전직 프로야구 투수 송승준이 최강야구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기를 갈망하고, 원없이 공을 쳐봤던 김문호가 막상 최강야구에서는 벤치멤버를 전전하자 타석에서 한 번만이라도 공을 쳐보려고 눈물겨운 연습을 합니다. 한술 더 떠서 김문호의 부인은 남편의 타석에서는 두손을 모아 기도를 합니다. 모두 야구에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입니다. 야구인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야구에 대한 갈망은 야구를 그만둔 지 수십 년이 지난 전직 프로야구선수에게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영미 기자는 동일한 내용을 두고 ‘일요신문’이라는 종이매체와 유튜브에 각각 게재를 하였습니다. 전자는 ‘‘프로야구 원년멤버’ 선우대영·김일환 “미국에 뿌리내렸지만 그 때가 그리워”’라는 제목으로, 후자는 선우대영과 김일환을 따로 나누어 이영미 기자의 유튜브채널에 각각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선우대영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전 연고 프로야구단 OB베어스의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76300

     

    https://www.youtube.com/watch?v=lXvRkP66KBI

     

     

    그런데 유튜브채널 중 ‘선우대영 1부’에서는 선우대영이 김성근의 혹사를 성토하는 것이 메인 주제인 것으로 오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역만리 미국까지 가서 고령의 노인인 김성근을 비난하려고 선우대영을 인터뷰를 하려 했다는 것은 평소 김성근에 대한 이명미 기자의 기사 내용을 보더라도 이영미 기자의 취재의도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근의 혹사 시비는 수십 년이나 이어진 해묵을 논쟁인데, 비싼 비행기표를 감내하고 굳이 미국까지 가서 사실확인을 위한 차원의 인터뷰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 두 기사를 대조해 보면, 인터뷰의 의도는 야구장을 떠난 지 오래되어 다른 일을 하는 전직프로야구선수라도, 특히 사업에서 대박이 난 선우대영의 경우라도 야구에 대한 갈망은 변함이 없다, 즉 영원한 야구인이라는 것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잘하는 선수는 거의 예외없이 머리도 좋습니다. 특히 유능한 투수는 상대하는 타자의 특성과 장단점, 그리고 상대기록 등을 머리에 저장해야 하며, 순간순간의 상황에 따른 기민한 대처능력이 필요하기에 머리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편견은 과거 정상수업을 받을 수 없었던 교육환경에 기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으로 운동선수의 지능이 낮다는 그 어떤 통계도 없습니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도 월등한 성적을 낸 선수들은 대부분 머리도 좋습니다. 조리있는 언변과 해박한 지식 등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저술이나 강연에서도 유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선우대영은 무려 40년이 넘었던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기억을 했습니다. 머리가 좋다는 증거이며, 앤틀란타 현지에서의 사업의 성공도 가능한 조건입니다. 게다가 선우대영은 응원팀 OB베어스의 좌완에이스라는 점, 약간 말상이기는 하지만 호남형의 얼굴이라는 점, 그리고 성이 복성인 ‘선우’라는 희귀성이라는 점 등이 인상적이었기에 특별히 기억하는 선수였습니다.

     

    원년 프로야구선수 중에서 박철순이 눈 밑에 검댕을 묻히는 것을 유행시켰다면, 선우대영은 저지의 윗단추를 잠그지 않고 목에는 금목걸이를 매는 패션을 유행시켰습니다. 지금은 고교야구선수들도 고글이나 선글라스, 그리고 검댕을 묻히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고교야구 전성기인 1970년대는 뙤약볕에서도 아무런 눈보호장치도 없이 경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교야구선수들도 유니폼에 패션을 가미한 것도 보편화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선우대영의 패션센스는 원년프로야구에서 선구자격으로 빛을 발한 셈이었습니다. 1982년 발간된 ‘OB베어스 팬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선우대영은 튀는 선수였습니다. 투구폼도 다이나믹했습니다.

     

    흔히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를, 유사한 속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같은 범주로 엮어서 설명합니다. 실제로도 유사성이 있습니다. 인기를 추구하고 소수만 살아남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 이전에 강한 개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유사성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속성과 달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연예인과 스포츠스타에게는 자신들의 전성기의 인기가 마치 마약과 같이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한물 간 배우라도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인기뽕’에 젖어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스타도 전성기의 활약을 잊지 못합니다. 왕년의 스포츠스타 선우대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50언저리까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팬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우대영 특유의 다이나믹한 투구폼에 출렁거리는 금목걸이가 풀어헤친 단추를 타고 유니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합니다. 유튜브를 보면서 선우대영에 젖었고 그 시절의 추억에 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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