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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리고 ‘센터를 서다.’>7080 이야기거리 2024. 9. 16. 13:38728x90반응형
일제강점기의 재사(才士)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한 마디로, 이광수 개인 차원에서는 이미 개조가 되었으니, 조선의 인민도 개조되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개조론’의 내용상 비판점 외에도 문장 속에서 쓰이는 고루하고 생격한 한자어투의 문장부터 과연 이광수가 ‘개조’된 상태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자신도 ‘바담 풍’ 하면서, 남에게 ‘바담 풍’이 아닌 ‘바람 풍’을 하라는 모순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개조론’ 곳곳에 담긴 기회주의에 격노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그 이후에 결성된 ‘기회주의 배격’이라는 모토가 중심이 된 ‘신간회’ 설립의 계기가 된 것도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요즘 인터넷 댓글을 보면, 2030세대들의 5060세대들, 특히 586세대들에 대한 공격이 마치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보는 듯합니다. 자신들은 똑똑하고 깬 세대들인데, 무능하고 시대의 혜택을 받은 586세대들은 기득권을 지녔으면서도 꼰대노릇을 한다는 것이 그 공격의 요지입니다. 양 세대들의 DNA 자체가 같기에, 별개의 인종이나 세대로 구분하기도 어렵거니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적응방식이 달라진 것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사실에 무분별한 격분을 표출하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어렵습니다. 아무튼 2030세대들은 구사 언어에 있어서도 5060세대들과 다르다고 강변을 하는데, ‘센터를 서다.’라는 말도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이돌 그룹은 복수의 멤버를 전제로 하지만, 아무래도 그 멤버들 중에서 비주얼, 메인보컬, 메인댄서 등에서 간판격인 멤버를 센터에 배치하는 관행이 형성되면서 중심, 즉 센터에 서는 멤버가 리더 또는 에이스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센터를 서다.’라는 말이 2030세대인 네티즌을 중심으로 신조어가 되었습니다. 센터를 선다는 의미를 잘 모르는 5060세대들은 자연스럽게 ‘틀딱’의 영역으로 밀려났습니다. 이제 ‘센터를 서다.’는 의미는 세대를 구분하는 언어로까지 등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과연 ‘센터를 서다.’라는 말이 진정한 의미의 신조어인지 의문이 있습니다. 당장 1978년에 발표된 3인조 여성댄스그룹 LUV의 ‘Trojan Horse’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wyRHZcw-I
‘Trojan Horse’는 1980년을 전후하여 이영화가 ‘트로이 목마’라는 번안곡으로 불러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도 한 곡입니다. 위 유튜브를 보면, 금발백인 미녀가 센터에 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외모 간판이 ‘센터를 서는 것’은 이미 1970년대 서양에서도 보편적인 자리배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LUV와 인기경쟁을 하던 3인조 미녀 그룹 Arabesque는 ‘Hello Mr. Monkey’라는 메가히트곡을 불렀는데, 바로 그 센터에 있던 Sandra만이 팀의 해체에도 살아남았고, 전설적인 Enigma의 멤버와 결혼까지 하게 되며 ‘Return to innocence’라는 명곡의 피처링을 하게 됩니다. 핑클이 해체되었음에도 보컬 센터인 옥주현과 비주얼 센터인 이효리가 살아남은 것, SES가 해체되었음에도 비주얼 센터 유진이 살아남은 것, 그리고 HOT가 해체되었음에도 HOT의 센터였던 문희준과 강타가 살아남은 것 모두 센터가 지닌 힘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센터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존재했다는 일련의 실증적인 사실입니다.
그리스의 올림피아제전이 승자,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진검승부에서 승자인 검투사가 섰던 Podium 모두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당시에 보편적인 승자를 위한 시설물입니다. 그 시절 승자가 섰던 Podium은 물론 현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승자가 서는 Podium 모두 센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센터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센터에 서는 것은 실은 기원전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단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센터에 선다.’는 말을 널리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너무 당연해서 우스운 감이 있지만, 하늘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중화사상 그 자체가 담긴 중국이 지닌 의미, 즉 ‘세상의 중심인 나라’라는 것도 중심인 것이 으뜸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고려하면, ‘센터에 선다.’라는 것은 동양의 보편적인 정서이기도 합니다.
축구에서 전방 공격수 중에서 왼쪽이나 오른쪽 공격수를 ‘포워드’라는 정식 명칭보다 ‘윙어’라 부르고 단지 중앙에 위치한 포워드만을 따로 ‘센터포워드(Center Forward)’라 부르거나 스트라이커라 부르는 것은 ‘골잡이’가 지닌 축구에서의 중요성, 그리고 이에 대한 예우를 담고 있습니다. ‘센터포워드’와 구분되는 것으로 ‘센터포드(Centerfold)’라는 것도 있습니다. 송대관의 ‘해뜰 날’의 표절곡으로 J. Geil’s band의 빅히트곡의 제목이기도 한데, 본래 센터포드란 주로 도색잡지(Girls Magazine)의 가운데 부분에 접혀 있는 대형사진상의 누드사진 등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여기에서도 센터의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참고로 J. Geil’s band의 곡 ‘센터포드(Centerfold)’에서는 학급의 천사 같은 짝사랑녀(My Crush)가 센터포드에 있었다, 즉 누드사진이 걸려있었다는 동심파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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