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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이 노래 : ‘사랑했지만’>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4. 11. 13. 09:52728x90반응형
시공을 초월하여 유달리 중국의 시인(詩人)이 지은 부(賦, 한시 중에서 정형시) 중에서 ‘대춘부(待春賦, 봄을 기다리는 내용을 담은 부)’라는 제목으로 지은 것이 많습니다. 물론 제목까지는 아니라도 그 내용 중에 봄을 기다리는 것을 담은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시인은 기본적으로 개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중국 시인이라고 하여 개성을 무시할 까닭이 없음에도, 동명의 대춘부를 그렇게나 많이 지은 것은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시대를 초월하여 공통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대춘부를 짓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시인으로 출발하여 역사소설의 획을 그은 박종화는 ‘대춘부’라는 이름의 역사소설을 썼고, 신석정 시인은 ‘대춘부’라는 서정시를 지었습니다.
매운 겨울에는 바로 이어지는 봄을 고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실은 겨울과 정반대의 상황인 뜨거운 여름의 무더위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그 무더위에 짜증이 나서 겨울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처지에 있다 보면, 정반대의 상황을 고대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테제-안티테제-신테제로 이어지는 헤겔의 유명한 변증법도 실은 이러한 개개인의 소박한 감성이 총화가 되어 역사철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변증법은 실은 인생법칙이고, 사람의 심리법칙인 셈입니다. 유달리 유행을 좇는 대중가요라고 다를 리가 없습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뽕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가사 내용이 야하고 비속적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팝가구 카디 B가 부른 ‘WAP’ 등 일련의 가사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과거 7080시대의 사랑문법에 비하면 직설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MZ세대의 눈에는 7080시대의 대중가요에 녹아있는 사랑문법이 뭔가 오글거리고 가식적이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물론 지금에서도 충분히 소구력이 있습니다. 시대를 달리한다고 하여 사람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표현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맹위를 떨치는 시점에서 역설적으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의 가사, 그리고 리듬 속에 묻어있는 잔잔한 사랑의 감성이 떠오릅니다. 김광석의 노래 대부분 서정시로도 출중하지만, ‘사랑했지만’은 사랑의 아날로그 감성이 최적화된 노래입니다. 공자의 논어와 예수의 성경이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관통하여 교훈을 주는 것은 이성을 울리는 그 시절의 DNA가 현대인에게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울리는 DNA가 남아있다면 당연히 감성을 젖게 만드는 DNA도 오롯이 사람의 감성에 녹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Ikbj54iFTdw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라는 팝송의 가사 중에는 ‘Twenty four years, just waiting for a chance. To tell her how I'm feeling, maybe get a second glance. Now I've gotta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 to Alice.’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노래 속의 화자는 짝사랑하는 앨리스를 무려 24년이나 바라보면서 말을 걸 기회를 고대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의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의 정서와 일치합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갈망, 그리고 망설임은 서양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직구를 날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을 수 있지만, 사랑의 고백은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입니다. 어렵게 혼자 끙끙 앓으면서 키운 사랑이 막상 날아갈 것이 두려운 것이 매정한 사랑의 이면입니다. 거절당했을 때의 그 쓰라림 때문에 밤을 새고 망설이는 그 충만한 감성이 사랑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사랑이 막상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 갖기 어려운 소중한 감성일 수 있습니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는 전부 고급 서정시입니다. 감성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고급스럽고 중후한 언어로 변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 유달리 혼신을 다해 자신의 감성을 노래에 녹여서 열창을 했습니다. 생전에 김광석의 노래를 듣노라면, 마치 융숭한 대접을 받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후에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 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김광석은 대중가요를 대중예술로 승화한 인물입니다. ‘Ars Longa, Vita brevis(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를 생생하게 울리는 것이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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