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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시스터즈의 이 노래 : ‘왜 그랬을까?’>7080 가수 2024. 12. 6. 07:53728x90반응형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가치는 부재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약에 효과나 배경을 살리는 음악이 없다면 아마도 해당 영화나 드라마의 맛은 확 죽을 것입니다. 음악 자체가 이미 엔터산업의 중추이기도 하지만, 음악이 하나의 유효한 장치로서 드라마, 쇼, 영화에서 맹활약하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실은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효과음으로 쓰이는 음악은 장르도 다양합니다. 영화주제가, 클래식음악, 대중음악, 만화주제가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활용됩니다. 대중음악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경우는 단연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로 시작하는 딕훼밀리의 ‘또 만나요’입니다. 이 노래는 과거 통금이 있던 시절의 유흥업소에서 엄청나게 애용이 되었습니다. 딕훼밀리 자체는 해체되었어도 그들의 대표곡인 ‘또 만나요’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애용이 되는 효과음입니다. 효과음을 넘어 시그날송이나 테마송으로 그 활용범위가 넓어져서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노래를 만든 작곡가나 작사가 모두 경악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작권료로 느낄 수밖에 없는 행복감은 추가입니다.
‘또 만나요’의 초대박을 대중음악 일반에 적용하는 것은 유보하여야 합니다. 대중음악은 유행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행이라는 복병을 만나 불운하게도 효과음으로서의 인기도 쇠락한 노래가 있습니다. 쿨 시스터즈의 유일한 히트곡이자 당대 최고의 효과음으로 애용되었던 ‘왜 그랬을까?’가 바로 그 노래입니다. 올드보이들은 노래의 제목은 몰라도 다음 대목은 귀에 익을 것입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uRpFq2cgnlY
실은 이 글을 쓰는 저도 전체 가사를 잘 모릅니다. 후크 부분이자 핵심인 바로 이 대목만 압니다. 이 노래는 주로 쇼프로그램에서 효과음으로 쓰이면서 1970년대에 맹활약을 했습니다. 고 곽규석이나 장고웅이 진행하던 쇼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망신살스러운 장면이 등장하면 거의 클리셰처럼 이 노래가 등장했습니다. 이 노래는 대전에서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서 여자아이들의 고무줄놀이의 테마곡(!)으로도 쓰였고, 급우들의 망신살행동을 조롱하거나 약올리는 경우에도 쓰였습니다. 어른들의 일상에서도 널리 쓰였습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유독 이 노래가 불편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를 겪기 마련인데, 실패하거나 결과가 나쁘다고 시도한 사람을 조롱하는 수단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짜증이 났습니다. ‘안 되는’ 상황을 맞아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슬프게도 이 노래를 멍석말이로 썼던 것이 당시의 풍경이었습니다. 입시부터 직업까지 최고등급의 수준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낙오자나 실패자로 규정하는 가혹한 환경이 한국의 굴레입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괴상한 인생교훈이 횡행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양심을 속이기에 꼴찌와 다름이 없으며, 이기는 편에 붙는 것은 기회주의의 전형입니다. 그럼에도 조롱과 질책이 두려워서 ‘아는 척’, 그리고 ‘있는 척’을 해야 했던 것이 한국인의 자화상입니다.
‘왜 그랬을까?’ 노래 자체는 실패자에 대한 조롱이나 비하는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서 후회는 어쩌면 필연적이기까지 한데, 그 후회되는 상황을 경쾌하게 그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가 실패자에 대한 조롱이나 비하로 악용되면서 노래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실패자에게도 부활의 길이 있어야, 즉 패자부활전이 보장된 사회가 성숙한 사회입니다. 어제의 성공자가 오늘의 패배자가 될 수 있으며, 패배자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는 유행이 지나서 잊혀진 노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조롱이 연상되는 불편함이 있어서 잊혀졌다는 것이 반가운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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