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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어카, 길보드차트, 그리고 저작권>
    7080 이야기거리 2021. 4.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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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흐르면 새로 생기는 말도 있지만, 사라지는 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언론에도 종종 등장했던 말이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말 중에 길보드차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길보드차트라는 것은 길거리빌보드차트의 합성어인데, 이것은 가요와 팝의 유행곡을 저작권을 침해하여 만든 테이프나 음반의 판매순위, 줄이면 불법복제물의 판매순위를 말합니다.

     

    길보드차트가 유행했던 시기는 70년대부터 90년 중후반까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저작권법이 강화되어 불법저작물이 길거리에서 사라지고 난 후의 일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 이전까지는 일상에서 불법저작물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학가에서 대학교재를 복사집에서 불법복제를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복사하는 것도 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음악의 불법복제는 주로 테이프로, 그리고 책의 불법복제는 주로 복사기로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법복제는 그 시기까지 거리낌이 없이 광범위하게 행해졌습니다.

     

    FM방송을 그대로 녹음하는 것은 카세트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인 1970년대에 주로 유행했습니다만, 이 작업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등장하는 시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레코드가게에서 맞춤형 복제를, 물론 불법복제, 하거나 아니면 리어카에서 대량으로 복제된 테이프를 사는 것이 전국적으로 대유행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불법복제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에는 나름 판매순위가 조잡한 손글씨로 써져있었습니다. 그것을 누군가가 길보드차트라 부르면서 이것이 삽시간에 유행어가 되었고, 방송에서도 버젓이 등장하는 일종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길보드차트란 히트곡만을 엄선(!)하여 들으려는 음악팬들의 요구와 불법복제업자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그 시기에는 맹위를 떨쳤습니다.

     

    표절은 불법복제와는 양상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다 같이 저작권법을 침해하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한 문제입니다. 가령, 마징가제트를 표절한 것이 로봇태권브이지만, 불법음반과 마찬가지로 원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점은 동일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하여 창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창작성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9601 판결).‘라고 저작물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는데, 표절은 유사하게 베끼는 방법으로, 그리고 불법복제는 저작권자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복제물을 제작하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도 한국은 저작권침해의 천국이었습니다. 쇼의 포맷부터, 광고, 학술서적, 만화영화 캐릭터, 장난감, 드라마, 가요 등 낯이 뜨거울 정도로 저작권침해가 온 나라를 휘감았습니다. 심지어는 영화제목의 번역까지 일본의 것을 베끼는 파렴치한 짓을 했습니다. 원제인 철십자훈장(The Cross of Iron, 독일어로는 Das Eiserne Kreuz)’‘17인의 프로패셔널이라는 기상천외한 번역을 한 일본사람의 번역을 그대로 베껴쓰는 쪽팔림이 한국에서는 만연했습니다.

     

    길보드차트는 엄연한 불법행위로서, ·형사상 책임을 져야만 하는 행위입니다만, 나름 순기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인가수의 등용문(!)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신인가수가 방송국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레코드사 사장의 주선이 있거나 아니면 방송국 음악담당 PD를 거치지 않으면 언감생심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거치지 않고 뜰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길보드차트였습니다. 이제는 노사연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이무송이 길보드차트로 떠서 제도권의 가수로 등극한 사연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제 길보드차트는 사라졌습니다. 음반시장 자체를 유튜브와 인터넷이 재편성했기 때문입니다. 정식 음반시장이나 CD시장 자체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불법복제물은 당연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테이프시장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불법다운로드 등 새로운 형태의 불법복제가 등장했습니다. 어쩌면 길보드차트는 새로운 형태로 존속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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