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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조 이야기>7080 이야기거리 2021. 9. 4. 17:41728x90반응형
1970년대까지는 초등학교에서 봄과 가을에 각각 운동회를 했습니다. 전자는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했고, 후자는 대개 10월초에 했습니다. 정식명칭은 ‘봄운동회’와 ‘가을운동회’였지만, 그냥 ‘소운동회(봄)’와 ‘대운동회(가을)’라고도 불렸습니다. 요즘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겠지만 당시에는 운동회 마스게임이나 곤봉체조 등으로 합법적으로 수업시간을 빼먹으면서 운동회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운동회가 열리면 귀신같이 각종 장사꾼들이 운동장으로 밀어닥쳤습니다. 야바위꾼부터 아이스케키 장수 등 각종 장사꾼들은 실은 운동회의 숨은 명물이었습니다. 운동장 구석에서 먹는 김밥과 음료수에 더하여 장사꾼들이 파는 음식을 먹는 재미가 운동회의 숨은 재미였습니다. 그러나 운동회라는 이름답게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서 계주를 비롯한 각종 경기가 진짜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기마전이나 매스게임, 부채춤 등은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었고, 학급마다 달리기시합을 해서 노트 등을 나눠주는 것도 운동회의 묘미였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운동회에서 정말로 빠지지 않았던 것이 제법 흥이 나는 리듬에 섞인 아재의 국민체조 구령으로 상징이 되는 국민체조였습니다. 당시 국민체조라면 글자 그대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체조였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면 분명 나이가 지긋한 아재인데, 정작 그 누구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지도 못했지만, 국민체조는 과연 국민체조였습니다. 국민체조의 음악이 퍼지면서 그 아재의 목소리가 들리면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았어도 마치 강시처럼 학생들은 국민체조를 했습니다. 운동회의 숨은 레파토리이자 진정으로 빠지지 않았던 레파토리는 단연 국민체조였습니다.
당시에도 국민교육헌장과 마찬가지로 국민체조에는 전체주의의 망령이 숨어있다고 비판을 하는 사람부터 왜 모든 학생이 국민체조를 해야 하는가 하면서 반발도 있었지만, 국민체조 자체는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지 않느냐는 긍정론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비록 군사정권의 위세에 눌려서 국민체조 자체는 강제로 시행이 되기는 했지만, 국민체조는 글자 그대로 국민들의 체조로 자리매김을 해나갔습니다. 운동회를 넘어 보험회사의 설계사, 조기축구 회원들에게까지 국민체조의 위세는 뻗어나갔습니다. 전 국민을 획일화하는 것이 나쁘다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했었지만, 국민체조를 통하여 몸의 균형을 잡고 건강을 유지하는 순기능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당시에 더 컸습니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에는 반드시 체육이 필수교과로 등장합니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지, 덕, 체가 아니라 체, 덕, 지라고 평가하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법제화된 지 오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 건강한 신체를 연마하면 평생에 걸쳐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21세기 현재는 운동회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체육교과목은 유명무실하고 오로지 교과과목에만 올인을 합니다. 다원주의 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정작 체육과목은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푸대접을 합니다. 과거 운동회는 학생들의 잔치를 넘어 만국기 아래에서 백발의 노인들이 손주들의 재롱을 관람하는 동네잔치였고, 지역사회의 잔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운동회를 통하여 건강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옛날 것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추억에 의한 보정효과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국민체조가 글자 그대로 전 국민의 체조였던 시절인 과거가 체조는커녕 체육교과목 자체가 유명무실한 현재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학교는 지식만을 전달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체육이 필요 없으면 각급 학교애 운동장은 왜 만들까요? 21세기 한국에서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구호가 허망한 듯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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