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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신의 이 노래 :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1. 11. 21.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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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우리 가요사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는 서태지를 시작으로 랩열풍이 생겼다는 점이고, 둘째는 HOT를 필두로 본격적인 아이돌의 등장, 셋째는 세션맨 등의 반주가 아닌 컴퓨터음악의 등장으로 샘플링 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반주가 본격화 되었다는 점, 넷째는 비쥬얼이 월등하게 출중한 가수들이 양산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중에서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는 점이 네 번째 문제입니다.

     

    가수들의 비쥬얼을 언급하는 것은 다분히 실례가 될 수가 있기에 꺼려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실례가 될 수 있어서 자제를 하겠지만, 실제로 1970년대에 활약한 가수들 중에서 비쥬얼은 떨어지지만 오로지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가수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비쥬얼이 월등히 빼어난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1980년대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FM 라디오를 통하여 팬층의 확보가 가능했지만. 1990년대는 비디오세대가 대세가 되었던 시기인지라 비쥬얼에서 경쟁력이 우월한 가수가 인기몰이를 하는 시대가 본격화되었습니다.

     

    혹자는 이 시기가 아이돌이 본격화 하는 시대이기에 비쥬얼의 중요성이 대세가 되는 시기라고 강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라드가수나 댄스가수나 비쥬얼이 가수의 중요한 상품가치로 본격화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HD TV의 본격화는 비쥬얼이 가수의 생명력으로까지 고양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심신의 등장은 여성팬들을 단숨에 휘어감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거친 목소리에 귀공자풍의 미소년은 과거 댄스가수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심신이었기에, 단숨에 그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리어카에서 파는 일명 길보드 차트의 시대였습니다. 심신이 길보드 차트를 석권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심신이 부른 오직 하나뿐인 그대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길거리에서, 그리고 라디오, TV에서 들렸습니다. 심신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심신은 바로 이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라는 발라드 곡도 소리소문없이 히트를 시켰습니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이 광풍이 너무나 뜨거웠기에,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가 가려지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곡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심신이라는 가수의 노래도 뛰어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쥬얼, 가창력 모두 갖춘 심신은 더 이상의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욕심쟁이라는 준척 수준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서태지와 신승훈, 그리고 김건모라는 동시대의 기린아들의 경쟁에서 밀린 후에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특히 심신은 고향 사람이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제 고교 동창이 심신과 한동네에서 자랐는데, 심신과 딱지치기를 하면서 그에게 딱지를 엄청나게 따먹었다는 무용담(!)을 과시한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인물이 출중하지만, 약삭빠르지 않고 어리숙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선하다는 인물평을 하곤 했습니다.

     

    심신은 재기를 위하여 몸부림을 쳤지만 실패를 반복하였고, 불미스러운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비운까지 겪었습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라도 인기가 사그라들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수의 비애입니다. 1990년대 남자가수 중에서 비쥬얼이 원탑이었던 심신은 꽃을 더 피울 수 있었지만, 그냥 사그라들어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가수입니다. 대전이라는 동향 사람이라 더 안타까운 심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aQVpjErr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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