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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단의 비밀’을 아시나요?>7080 이야기거리 2022. 3. 5. 19:32728x90반응형
돌직구 질문을 해봅니다. 중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한국산임을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다수는 알고 있다고 답을 합니다. 중국 네티즌의 반응을 전하는 일명 ‘국뽕 유튜브’는 물론 실제로 중국신문에 달린 댓글을 보면 한국을 베끼는 것을 비난하는 댓글도 꽤나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중국 방송국은 쪽팔림을 무릅쓰고 한국베끼기를 감행하는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정서상 한국에서 히트한 작품은 중국에서도 먹어준다는 것입니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프로그램이 망하면 금전적 피해부터 막심한 피해가 돌아옵니다. 그래서 ‘안전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국 방송국 제작진의 모습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에서도 일상사였습니다. 단지 그 주체와 대상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특히 만화영화의 일본베끼기는 처참할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리지날 만화영화라는 점 때문에 바로 이 ‘77단의 비밀’이 눈물겹도록 반갑습니다. 그러나 중국 방송국의 제작진이 우려했던 바로 그 이유, 즉 흥행실패라는 결과가 바로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살았던 어린이의 영원한 벗 소파 방정환이 쓴 아동소설이 원작인 ‘77단의 비밀’은 재미있게도 1977년에 개봉되었습니다. 개봉당시에는 나름 화제를 몰고 왔기에, 당시 아이들이 갖고 놀던 딱지에서도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인 점, 그리고 흑두건을 주제가로 내세웠지만 정작 무술활극은 양념수준에 불과한 점, 아이들에게 독립군의 활약의 상세한 전개가 조금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77단의 비밀’은 히트작의 전매특허인 후속작을 낳지 못하고 그냥 기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바보 캐릭터가 흑두건 등 변장술을 이용하여 절정의 무술고수로 변신하여 악당을 물리친다는 클리셰는 꽤나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상반된 인물의 설정은 ‘쾌걸 조로(‘Zorro’를 국내에서는 ‘조로’로 대부분 발음하나 스페인어는 우리말의 ‘ㅈ’발음이 없습니다. 원어로는 쏘로에 가깝습니다. 스페인어 이름 중 Martinez를 ‘마르티네즈’로 읽는 분이 있는데, 같은 이유로 ‘마르티네스’에 가깝습니다)’를 비롯하여 무협지에 무수히 등장하는 클리셰입니다. 클리셰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가 있다는 플롯이기도 합니다.
‘77단의 비밀’은 일제의 앞잡이인 ‘77단’이라는 곡마단에서 곡예를 하던 상호, 순자 남매가 친일앞잡이라는 이들의 비밀을 알아채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순자가 붙잡히지만, 상호가 흑두건의 도움으로 77단을 물리친다는 만화영화의 철칙인 권선징악코스로 전개되는 스토리입니다. 극중 77단의 단장 부인이 ‘변소’라는 말을 쓰는데, 요즘 일상에서도 화장실이 아닌 변소로 쓰는 경우가 흔하지 않아서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상호, 순자 남매가 항일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며, 흑두건의 활약은 이들 남매를 수호하는 역할에 그쳐서 뭔가 전통적인 흑두건의 역할에는 미흡합니다. ‘일지매’와 같이 흑두건은 그 자체가 의협물의 주인공인 것이 한국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이기에 더욱 아쉽습니다.
아동물도 아니고 성인무협물도 아닌 그 어정쩡한 포지션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77단의 비밀’은 그 이후에 드라마나 영화로 리메이크가 되지 못하고 단발히트로 그 수명이 종결했습니다. 만화영화화 했다가 대차게 말아먹고 드라마로 대박을 친 허영만 원작의 ‘각시탈’과 크게 대비가 됩니다. 그런데 항일투쟁을 소재로 플롯이 짜진 점과 지금은 사라진 곡마단의 볼거리. 그리고 흑두건이라는 무협영화의 필살기를 갖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그 플롯을 재구성하여 드라마나 영화로 화려한 변신을 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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