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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모델 이재연>7080 이야기거리 2022. 3. 12. 00:14728x90반응형
20세기 영소설의 최고봉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젊은 날의 초상)'이 절절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작가의 진솔한 자기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문열은 특유의 지적 현학성이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지만, 그나마 진솔성이 담긴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명을 차용한 ’젊은 날의 초상‘입니다. 한국 모델계의 대부인 이재연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왜 뚱딴지같은 소설이야기를 하는가, 반문을 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재연은 저의 학창시절과 사춘기, 그리고 허영심을 소환할 수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솔직한 자기반성을 할 계기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재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그가 CF의 모델로 인기를 끌었던 삼성물산의 ‘맥그리거’와 ‘위크엔드’라는 브랜드의 의류모델로 각광을 받으면서입니다. 당시 TV용 CF는 조잡한 삽화를 배경으로 제작한 싸구려CF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맥그리거’와 ‘위크엔드’ CF는 ‘주말은 자연에서’라는 카피문구 그대로 뗏목을 타고 강을 타고 내려가는 멋진 배경으로 제작되어서 그야말로 ‘뽕가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재연의 회상 뒤에 이어지는 ‘맥그리거’와 ‘위크엔드’의 CF를 보면, 1980년 전후임에도 제작비가 꽤나 들었을 것이 확실한 멋진 장면이 이어집니다. CF속에서는 주말을 가볍게 야외에서 즐기자는 유혹을 하지만, 실제로 똇목을 제작하는 것은 거액이 소요되고 엄청난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당시 ‘위크엔드’ 옷은 화려한 CF의 제작비용을 투자한 당연한 귀결로 시장표 옷보다 최소 몇 배는 비쌌습니다. 사소한 것도 부럽고 갖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사춘기 시절에 ‘위크엔드’ 옷을 입은 친구들이 엄청나게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갖고 싶었습니다. 이성을 의식하는 사춘기, 게다가 전두환 정부의 교복자율화 정책 이후 ‘위크엔드’, ‘챌린저’, ‘뉴망’으로 이어지는 당대 톱클래스였던 삼성물산의 패션브랜드 시리즈는 무수한 감정의 교차를 안겨주었습니다. 지금이야 아무 브랜드 옷이라도 입지만, 당시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먹어주는 ‘위크엔드’ 옷을 입으면 그냥 뻐기고 목에 힘을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I9lmu-feIQ
영어의 casual wear를 어색하게 ‘간이복’이라 번역한 것이 당시의 강요된 국어사랑을 보는 것 같아서 옥의 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거액을 써서 CF를 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영업이익이 많았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특히 이제는 삼성그룹 신화의 주역인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합섬 삼형제 모두가 의류 사업 자체를 하는둥 마는둥 하는 상황이라 당시 삼성그룹에서 의류사업의 비중이 어떠한가를 추측할 수 있게도 합니다. 그런 당시의 상황에서 이재연의 단독 풀샷이 인상적인 ‘위크엔드’ CF를 보면, 당시 이재연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재연은 죽는 날까지 정말 멋진 사람이었고 패션모델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r3aO8uK470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말이 있습니다. 같은 옷을 입더라도 이재연 같은 정상급 모델이 입으면 옷에 빛이 납니다. 그래서 강인한 야성미가 넘치는 이재연의 ‘위크엔드’ 패션은 제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임에도 엄마를 졸라서 마침내 ‘위크엔드’ 옷을 입었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후로 ‘첼린저’ 옷을 입었을 때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친구들이 ‘야, 위크엔드 입었구나!’하면서 한마디를 하면 우쭈쭈하는 마음이 절로 솓구쳤습니다. 이재연은 저에게 인생의 일부를 소환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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