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의 이 노래 : ‘잃어버린 추억’>

비상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발매 앨범을 산 것은 1988년 3월초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서울 낙성대 지하철역 인근 레코드가게(지금은 레코드가게 자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에 무심코 들려서 얼떨결에 ‘비상구’라는 그룹의 테이프(이제 테이프 자체가 생소합니다)를 주인장의 권유에 샀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냥 ‘잃어버린 추억’이라는 노래를 부른 그룹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테이프가 숨은 명반이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대학교 기숙사에 돌아와 비를 벗삼아서 하루종일 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그 이후로 테이프가 문제의 비상구 테이프를 듣고 또 들어서 마침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습니다.

 

테이프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정작 테이프의 재킷사진은 처음에나 몇 번 보고 그 이후에는 그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재킷사진의 배경사진인 버스정류장 표지가 대전의 그것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에는 대전 버스정류장 표지에는 지역의 유명 사업체 광고가 들어있었는데, 당시 대전에서 꽤나 먹어줬던 ‘라이카 사진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이들이 대전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비상구’가 대전을 연고로 밤무대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을 그 이후에 알았습니다. 고향 대전이기에 더욱 ‘비상구’가 반가웠습니다.

 

그 이후에 고교시절 교사(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여학생만을 가르치던 체육교사였습니다. 그 유명한 ‘김덕수 사물놀이’의 리더 김덕수의 여동생이었습니다)의 남편과 우연히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비상구’의 리더이자 유명 작곡가 김기표와 밴드활동을 하던 무명 가수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과 작곡활동도 한다고 자랑을 꽤나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가요계의 관행이 무명 작곡가의 경우에는 실제 작곡가가 아니라 유명 작곡가의 이름으로 표기된다고 하면서, 자신의 동생이 작곡한 곡이 김기표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고 무척이나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니까 무명 작곡가가 뜨기 위해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유명 작곡가의 이름으로 올리고는 그 대가로 가요계에서의 활동을 널리 보장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당시 가요계의 관행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비상구의 리더이자 유명 작곡가, 그리고 연주가 김기표가 대전에서 활동을 하면서 조직한 밴드가 ‘비상구’이고 그 ‘비싱구’의 보컬이자 트로트의 여왕 주현미의 남편 임동신도 대전출신이라는 점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대전출신 가수 심신이 김기표의 곡을 받아서 데뷔 앨범을 낸 것도 대전이라는 인연이 작용했습니다. 아무튼 제 고향이 대전인지라 어디서 ‘대전’이 등장하면 예나 지금이나 무턱대고 반갑습니다.

 

심신이 등장했으니까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심신의 비화를 소개합니다. 심신은 대전 보문산 아래 부사동 출신인데, 어려서부터 어리숙할 정도로 성품이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연예계에서는 약삭빠르고 영악한 연예인들도 많은데, 심신은 까도남 이미지와는 달리 순박한 시골청년같은 사람입니다. 심신은 잡기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제 고교 동창에게 늘 딱지를 잃었습니다. 딱지를 많이 잃으면 얼굴이 벌개지면서 울먹울먹하곤 했습니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로 확 떴지만, 더 클 수 있는 자질에 비하여 더 못 큰 것이 아쉬운 것이 심신입니다. 그래도 고향사람이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심신을 응원합니다.

 

‘비상구’ 이야기와 대전, 그리고 심신까지 두루 섞여서 헷갈립니다. 이제 다시 ‘비상구’ 이야기로 정리를 합니다. 1980년대 전형적인 락뽕(락과 뽕짝의 혼합)스타일의 ‘비상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은 버릴 노래가 없는 주옥같은 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리드 보컬 임동신이 주현미의 외조 등을 이유로 탈퇴를 하면서 자연스레 해체가 되었고 더 이상의 활동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앨범은 임팩트가 대단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제게는 언제나 ‘라이카 사진관’과 대전을 소환하는 그룹이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FFGk9eXiO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