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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이철원 캐스터>7080 이야기거리 2022. 7. 23. 10:25728x90반응형
김일 프로레슬링, 박종팔 복싱, 차범근 축구
위 전설들이 활약하는 현장에서 직접 중계를 한 사람이 모두 동일한 사람이라면 요즘 MZ세대들은 전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한 종목에서 발군의 중계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 서로 다른 종목에서 빼어난 역량으로 중계를 한 MBC 아나운서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이철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yj1e2B5xxI&t=22s
위 시그널 뮤직은 오랜 기간 MBC스포츠를 상징하는 음악이었습니다. 프로레슬링, 축구, 복싱 등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등장한 시그널 뮤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음악이 끝나면 바로 그가 등장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시합이 시합을 벌이면 그야말로 ‘국뽕의 향연’이었습니다. ‘국뽕의 향연’이 넘치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비교적 차분하고 냉정하게 중계를 했습니다. 아나운서답게 절도있고 명확한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실은 그가 차분하고 냉정하게 중계를 했었기에, 역설적으로 시청자들은 그의 중계패턴에 질리지 않고 오랜 기간 중계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언제나 차분하게만 중계한 것은 아닙니다. 강약조절이 있었고 감정이 필요한 순간에는 마음껏 발산했습니다. ‘박치기 도사’ 김일이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상대에게 박치기를 하면 방송화면에서는 신이 난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를 통하여 ‘버디 슬램’, ‘코브라 트위스트’, ‘16문킥(프로레슬러 고 자이안트 바바의 필살기!)’ 등 프로레슬링의 용어를 배웠습니다. 그가 중계도중에 말했던 프로레슬링의 용어가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박종팔이 ‘어퍼컷’ 펀치를 휘두르면 특유의 ‘아빠깟트’라고 발음하곤 했습니다. 차범근이 ‘슛’을 날리면 ‘슈우웃!’하면서 길게 발음을 뺐습니다.
1982년 뉴델리아시안 게임에서 마라톤의 김양곤이 금메달을 딴 순간에 ‘마라톤 골인합니다! 김양곤이 마라톤을 정복했습니다!’라는 감격에 겨운 중계를 했던 김용과 더불어 이철원은 MBC의 간판이었습니다. 이철원의 동료 김용은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감정을 푹 실어서 중계를 했습니다. 억양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김용이 온탕이라면 이철원은 냉탕과 같았습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그리고 전국체전 등 종합스포츠와 야구에 특화된 중계를 한 김용과 달리 이철원은 당시 국민들의 인기스포츠인 축구, 복싱, 그리고 프로레슬링에 특화된 중계를 했습니다.
한때 국민캐스터로 인기를 누렸던 송재익이 바로 이철원의 후배입니다. 이철원이 차분하고 냉정한 중계로 눈길을 끈 반면에 송재익은 특유의 입담으로 과장된 감정을 담아서 신문선 해설위원과 함께 뜨거운 인기를 누렸습니다. 같은 종목의 스포츠라 하더라도 캐스터에 따라 경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달라지는 것도 스포츠중계를 보는 묘미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철원이 메인, 송재익이 서브로 중계를 하다가 1980년대 중반 이철원이 전주MBC 사장으로 영전하는 바람에 이철원이 장기집권했던 영역을 송재익이 점령했습니다. 이철원의 차분한 멘트는 송재익의 과장된 멘트로 대체되었습니다. 차츰 이철원은 잊혀졌습니다.
다음 노래는 1970년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우리들은 대한건아’라는 국뽕응원가입니다. 당시에는 아시안게임은 물론 태국의 킹스컵축구에서 우승을 하더라도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을 지나는 카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름도 대다수 국민들이 잘 모르는 요즘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스포츠의 성과를 국뽕으로 포장하고 정권의 치적으로 둔갑을 시키는 당시의 ‘관제 국뽕’을 생각하면 이철원의 트레이드마크인 차분하고 냉정한 중계가 역설적으로 더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이제 스포츠캐스팅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더 이상 이철원과 같은 캐스터는 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철원의 가치가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bn2Ftlkv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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