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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그리고 박경순>
    7080 배우/7080 남자배우 2023. 11. 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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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여름은 엄청 더웠습니다. 그 여름은 김일성이 급사해서 유명했고, 더워서 또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름은 서울의 달이라는 국민드라마가 뜨겁게 사랑을 받던 여름이었습니다. ‘서울의 달은 한석규와 채시라가 주연이기는 했지만, 출연 배우 모두가 주연인 느낌의 특이한 드라마였습니다. 백윤식과 윤미라의 코믹데이트,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마무리라는 김영배의 경부선춤, 멋쟁이 김용건의 망가진 모습, 코털영감님 이대근의 너털웃음 등 무수히 많은 조연배우들의 쟁쟁한 연기가 빛났기에, 이들 모두가 조연이 아닌 주연 느낌이 나는 드라마가 되었고, 바로 그 이유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민초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을 그려지는 외형적인 모습과 달리 이 드라마 전반에는 출세라는 이름의 허황된 욕망이 그려졌습니다. 주인공 한석규가 말하는 성공이란 부단한 노력에 따른 성공이 아닌 한탕을 거하게 하고 아메리카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석규 이외의 인물들도 대부분 평범한 서민들이 아니라 한탕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서민들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실은 제목 서울의 달이란 서울로 상경하여 달(성공)을 따려는 청년의 비뚤어진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셋방살이를 하면서 당시 서민들의 꿈인 내집마련을 하려는 상국 아빠역의 박경순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실은 극중 상국 아빠야말로 당시 서민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중 상국 아빠 박경순을 보면서 자꾸만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단막극 시리즈 ‘MBC 베스트셀러극장연작물 중 하나인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박경순은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에서 자해공갈배로 분하여 극중 꽃뱀인 이미영과 이색적인 커플로 열연을 펼칩니다. 이 작품은 당대 대중소설의 정상이었던 고 최인호 원작을 드라마화한 것으로,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두 배우가 출중한 연기로 형상화한 멋진 드라마였지만, 특히 박경순은 발군의 연기력으로 보는 재미를 극대화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1984년에 방영된 이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의 인상이 깊어서 그 뒤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극장(후일 베스트극장)’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배우의 인생이야말로 배역에 따라 카멜레온과 같이 변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지만, 오래전에는 자해공갈배로 등장하여 갈비뼈와 다리뼈를 억지로 부러뜨리고 돈을 갈취했던 사람이 가장 성실한 서민으로 변신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배우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배우에게 연기는 마약과 같다고 합니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에 울고 웃는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 마약이라는 근원적인 원인이겠지만, 연기를 빙자하여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합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묘한 쾌감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배우 인생의 대부분을 서민으로 연기한 박경순이지만, 같은 서민이라도 정반대의 상황을 연기하는 것은 배우 개인에게도 마약과 같은 쾌감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봅니다.

     

    서민 역할의 강타자인 박경순이라도 최근에는 출연이 뜸합니다. 최근 드라마의 트렌드가 워낙 청춘스타 위주로 전개되기에, 박경순과 같이 조연 전문배우에게는 시련의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경순이라는 이름 자체를 오랜 기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얼마 전, 박경순을 우연히 마주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여의도의 커피숍 옆자리에서 바로 박경순을 봤습니다. 박경순 본인에게는 송구한 일이지만, 유명 배우라는 사실은 바로 생각났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이름은 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손님과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면서도 옆자리의 배우 이름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리고 입주위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손님과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박경순이라는 세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의 장면 하나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실물 박경순은 화면속에서의 박경순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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