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마술사, 문성근>

다음은 미국을 대표하는 SF영화 시리즈 ‘Star Wars’에서 Darth Vader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 겸 성우 James Earl Jones가 한 토크쇼에서 목소리 출연의 소회를 밝히는 장면입니다. 중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목소리는 CNN을 상징하는 바로 그 목소리 ‘This is CNN’이라는 멘트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무려 40년이 넘는 동안 왜 그가 헐리우드 역사상 손꼽히는 빌런인 Darth Vader의 목소리를 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배우의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헐리우드 유명배우들 중에서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의 목소리로 출연한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영화의 본고장 헐리우드에서 목소리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직접적인 근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xDy5-asajo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연기력, 하면 표정변화와 동작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목소리 자체를 연기력의 중요 요소로 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감상하는 현장에서 관객들은 보통 음향이나 소품의 중요성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의외로 목소리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연기의 출발은 목소리입니다. 배우가 실연을 하기까지는 다양한 과정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바로 대사를 읽는 과정, 일명 ‘리딩’ 과정입니다. 배우들의 리허설에서 대본의 리딩작업은 배우에게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내재화하면서 동시에 캐릭터에 자신의 영혼을 이식하게 됩니다. 배우의 연기 변신은 곧 해당 배역에 최적화된 목소리라는 긴 탐구과정인 동시에 중간기착지를 거치고 변신이라는 마술을 익혀야 비로소 종착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문성근이 바로 목소리의 마술사입니다. 문성근은 진보정치색이 뚜렷한 배우입니다. 팬들의 정치이념에 따라 문성근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것을 감내하는 배우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성근의 정치노선을 혐오하는 팬들이라도 배우로서 문성근의 연기력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연기력은 배우들 중에서도 맨꼭대기에 있는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첫 번째 ‘101번 째 프로포즈’에서는 어리석고 숫기없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두 번째 ‘실종’에서는 한국 영화역사상 역대급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캐릭터를 이처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i3tEaa1ShE

 

 

https://www.youtube.com/watch?v=HvnnCduFoSY

 

위 두 영화에서 문성근은 각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내리는 목소리를 창조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문성근은 기본적으로 발음이 정확하고 음성이 훌륭합니다. 요즘 ‘딕션이 좋다’는 표현을 널리 쓰는데, 여기에 부합하는 배우가 바로 문성근입니다. 기본 바탕이 좋은 데다가 변신에도 능한 것이 문성근입니다.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데다가, 배역마다 목소리를 맞춤형으로 창조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목소리의 마술사란 바로 이점을 주목하여 부르는 것입니다.

 

문성근은 주연급 배우라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유형의 꽃미남이 아닙니다. 그냥 도시의 인텔리의 전형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가 배우로서 오랜 기간 활동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연기력이라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연기력의 정점을 이루는 것이 목소리의 마술같은 변신입니다. 그가 각종 다큐멘타리에서 다양한 나레이션을 소화해 내고, 시사프로그램의 MC로 맹활약을 했던 것은 목소리의 마술을 구현한 결과입니다. 문성근을 훌륭한 배우라고 평가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상황에 따라 최적의 목소리를 구현하는 목소리의 마술사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