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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은숙의 이 노래 : ‘노래하며 춤추며’>
    7080 가수/7080 여자가수 2024. 6. 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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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심유화책으로 도입된 정책 중의 하나가 칼라방송입니다. 그 이전에는 흑백TV로 공중파방송을 봤습니다. HDTV를 넘어 4KTV 화면으로 TV를 보는 요즘의 시각으로는 흑백TV의 답답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 모두가 흑백TV를 보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그 시절에는 전 국민이 그 답답함을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실은 그 시절의 TV방송이란 전 국민의 오락이자, 언론을 넘어 인생의 동반자였습니다. 그래서 칼라방송으로의 전환이란 엄청난 생활혁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도 조금씩 사그라들어가는 계기였음은 긴말이 필요없습니다.

     

    칼라방송의 등장은 연예인들에게도 새로운 시대에의 전환을 강제했습니다. 외모가 출중한 청춘남녀 배우가 각광을 더 받았고, 가수들도 비주얼이 인기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자 연예인에게 외모는 중요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라이벌구도를 형성했던 이은하 혜은이 구도가 급격하게 혜은이의 우위로 기울었던 것도 바로 이 칼라방송이 계기가 된 것은 물론입니다. 또한 원로 아나운서 이계진이 여자아나운서가 최고의 신붓감이라고 강조했던 계기는 바로 1980년대에 등장한 칼라방송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아나운서는 라디오시대, 그리고 흑백방송시대에는 목소리가 청아하고 이지적인 것이 무기가 되었지만, 칼라방송의 등장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외모가 경쟁력이 되었고, 나아가 여자아나운서의 연예인화가 촉진되었습니다. 물론 남자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정도는 확실하게 여자아나운서가 강했습니다.

     

    계은숙은 바로 이 칼라방송의 수혜를 받은 가수였습니다. 그 이전의 오디오가수와는 달리 섹시함이 묻어나는 허스키보이스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입니다. ‘코미디의 황제고 이주일이 홀리데이 인 서울이라는 밤업소를 운영했을 때의 회고를 보면, 확실히 칼라방송의 출현 이후에 여가수의 외모가 밤업소의 인기척도가 된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밤업소의 주요 고객은 중년의 아재들인데, 술이 불콰한 중년의 아재들은 계은숙과 같이 목소리와 외모에 섹시함이 묻어나면 환호작약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용필이나 나훈아 같은 슈퍼스타들은 당시 슈퍼갑의 지위에 있는 방송국의 호출이 많아서 밤무대 공연에 의외로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미모가 출중했던 계은숙의 경우는 그야말로 가성비갑이었던 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TNiCK7aPoY

     

     

    다른 은숙인 장은숙과 더불어 그때 그 시절의 비주얼가수 계은숙의 인기가 뜨거울 무렵에, 그는 모종의 방송사고로 일본행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일본무대에서 받는 돈의 단위가 월등했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통하는 미모가 일본에서는 다를 리가 만무합니다. 미모를 무기로 일본무대를 공략했던 계은숙은 마침내 정상급 가수로 도약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일본의 대중문화가 정식수입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반일정서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일본대중문화가 수입된 점을 고려하면, 그 시절 일본무대에서 활약하던 계은숙을 공중파에서 방영하기란 쉽지 않았음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한창 인기가 뜨거웠던 계은숙은 이제 인기가수가 아닌 원로가수가 되었습니다. 밤무대에서 계은숙을 연호했던 중년의 밤무대 아재들은 인생무대에서 대부분 퇴장했습니다. 그 이유도 이유지만, 다시 인기를 회복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는 뽕끼(일명 트로트’)가 묻은 노래가 대세였지만, 아이돌세상인 지금의 무대는 뽕끼가 없는 노래는 기본이고, 가수들의 비주얼에 더하여 랩과 댄스가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은숙의 대표곡인 노래하고 춤추며는 당시 세계적인 흐름인 디스코리듬을 따랐지만, 여전히 뽕끼가 가득합니다. 4박자 베이스인 디스코는 뽕끼와의 화학적 결합도 가능한 역설이 있습니다. 실은 이렇게 뽕끼가 체화된 계은숙이었기에, 김연자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엔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이것이 일본무대에서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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