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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방, 그리고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
    7080 이야기거리 2024. 6. 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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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의 대지의 주인공 왕룽이 늘그막에 바람을 피는 장소가 다방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의 주인공 RJ가 주야장천 만나는 장소도 다방입니다. 물론 둘은 모텔을 추가하기는 합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를 강타했던 김홍신의 인간시장에서 소재로 쓰인 만남의 장소는 단연 당구장과 더불어 다방입니다. 만남의 장소로서 다방은 나름 족보가 있습니다. ‘명동백작이라 불린 박인환 시인은 물론 김동리 소설가 등 네임드 문학인들이 늘상 모였던 곳이 은성다방등 다방인 사실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외국인이 한국에서 너무나 많아서 의아해했다는 곳이 교회, 당구장과 더불어 다방이었습니다. 서울 신촌의 독수리다방1980년대 연세대를 넘어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방에서 데이트는 물론 맞선이 행해지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 빛의 속도로 다방은 커피숍으로 변했습니다. 커피숍에서 나눠주는 성냥갑수집이 청춘들의 취미로까지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개인 커피숍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카페에서 커피를 팔기도 했습니다. 유달리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의 풍속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커피가 대중가요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없을 리가 만무합니다. 시대를 풍미한 펄시스터즈가 발표한 커피 한 잔이 있습니다. 펄시스터즈는 조건반사로 신중현을 소환합니다. ‘신중현 사단의 핵심멤버였기 때문입니다. 펄시스터즈는 허스키가 묻은 섹시한 목소리에 세련된 미모로 당대의 아재들을 무장해제시킨 전설적인 듀엣 가수였습니다. 은방울자매, 토끼소녀, 나비소녀, 숙자매, 희자매 등 무수히 많은 자매가수들 중에서도 인기가 화끈했습니다. 그 펄시스터즈의 대표곡이 바로 커피를 소재로 한 바로 이 커피 한 잔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9oZQMB2j14

     

     

    커피 자체는 가족, 동료, 선후배 등 누구와도 마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혼자 마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시면 대중가요의 소재로는 꽝입니다. 연인과의 달달한 장면이 있어야 비로소 대중가요의 소재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일사천리라면 재미가 없습니다. 뭔가 간절하고 애타는 상황을 포함해야 대중가요의 소재로 딱입니다. 마치 갈등이 없으면 드라마나 영화가 시시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와요. 1분만 있으면 나는 가요.

    나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구려.

     

    커피 한 잔속의 화자는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 그대로 애간장을 녹이면서 연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분이 1시간과도 같은 상황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출발이나 도착여부를 알 길이 없는 막연한 상황에서 애를 태우면서 연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에 다방에서는 시간을 보내면서 심심풀이로 성냥탑을 세우는 유행(?)이 있기도 했습니다. 다방은 연인의 장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인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다방이 대표적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이 다방에서 벌어지는 것을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지만, 전후 가사의 문맥상 다방이 아니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대중가요가 사회상,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은 그 시절의 연애상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을 통한 연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추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스마트폰시대에서는 커피 한 잔속의 풍경도 감정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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