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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은이의 이 노래 : ‘독백’>
    7080 가수/7080 여자가수 2024. 7. 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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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를 빛낸 두 명의 마이클이 있었습니다. 하얀 마이클과 검은 마이클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전자는 조지 마이클이고, 후자는 마이클 잭슨입니다. 둘은 모두 신계급의 히트곡을 지닌 가수였으며, 이제 고인입니다. 이렇게 피부색만 다를 뿐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 중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 모두 죽기 전 오랜 기간 히트곡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둘 모두 어마어마한 팝가수이기에, 줄을 대려는 작곡가들이 넘쳐났을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두 명의 마이클 중의 하나라도 불러서 대박이 난다면 3대가 먹고 살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데, 마다하는 작곡가들이 없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둘 모두 이미 메가스타이기에, 역설적으로 아무 곡이나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자칫 쪽박이 나면, 기존의 히트곡도 사장되는 불행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가요는 신곡이 히트하면 기존의 히트곡도 다시 히트하는 묘한 연관효과가 있습니다. 반면에 쪽박이 나면 기존의 히트곡도 덩달아 묻히게 됩니다. 나아가 인기의 추락을 넘어 위상의 추락까지 겪게 됩니다. 금전적 손실은 어쩌면 부수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존에 구축한 자신의 캐릭터, 이미지, 그리고 가수로서의 위상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신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곡의 발표는 이렇게나 대단한 두 마이클에게도 모험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7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어느 가수가 1980년대를 맞아 완벽한 변신을 도박을 했고, 그 도박이 대박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그 가수가 혜은이이며, 그 노래는 독백입니다. 혜은이는 데뷔부터 전성기를 누리던 시점에서 길옥윤과 황금콤비를 이루었습니다. 부르는 노래마다 초대박이 터졌고, ‘10대 가수제가수왕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길옥윤과의 갈등이 슬며시 언론에 노출이 되고, 둘은 결별을 하게 됩니다. 마치 이문세와 이영훈의 관계처럼,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혜은이가 홀로서기를 하면서 만난 작곡가는 1980년대를 강타한 히트곡 제조기로 당시로서는 20대 신예 작곡가인 이범희였습니다. 비록 중퇴이지만, 길옥윤도 서울대 출신이고, 이범희도 서울대 출신이라 당시 연예기사에는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조명이 되었습니다. 길옥윤은 대중적인 취향의 곡이 많았지만, 이범희는 클래식음악, 게다가 작곡을 전공한 사람답게 중후한 음색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범희의 음악 중에서 유달리 피아노 반주가 많은 것은 아마도 클래식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이범희의 곡은 고급스럽고 이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1980년대의 대중음악 자체를 한 단계 올려놓았습니다. 한국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그 유명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이범희의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4wSDYIagso

     

     

    혜은이의 변신은 노래풍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혜은이의 독백은 가사에서도 발랄하면서도 경쾌한 길옥윤의 곡에서 풍기는 인상이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백을 하듯이 속삭이는 듯한 창법도 또한 혜은이의 변신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독백으로 혜은이는 길옥윤의 이미지를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길옥윤은 당시를 기준으로도 올드한 인상이 강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빛은 꺼지고

    멀리서 밀려드는 그리움

    조그만 내가슴에 퍼지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 모습

     

    혜은이는 1970 ~ 80년대를 석권한 가수입니다. 미모, 노래, 춤 모든 면에 있어서 당대 원탑 가수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혜은이와 결혼할 수 있다면, 이라는 망상과 희망을 오가는 상상을 무척이나 많이 했습니다. 더군다나 혜은이는 제 고향 대전에서 초(선화초), ·(호수돈)를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대전에서는 혜은이의 학창시절에 대한 에피소드가 거의 없었습니다. 무척이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다는 것이 공통된 증언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기억이 약간은 다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혜은이는 제주 출신에 대하여는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제2의 고향인 대전에 대하여는 그 오랜 연예활동 기간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난 곳만 아니라 자란 곳도 어쩌면 고향인데 말입니다. 딱 그 대목만 빼고 저는 영원한, 그리고 뜨거운 혜은이의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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