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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운의 꽃미남, 임성민>
    7080 배우/7080 남자배우 2024. 8. 10.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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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졸업반 마지막 학기의 일입니다. 학생회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법대 도서관 쪽으로 오는데, 한 친구가 ! 최진실을 문화관 앞에서 봤다!’ 하면서 연신 싱글벙글했습니다. 당시는 최진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기에, 당시 MBC폭풍의 계절이라는 드라마 촬영을 했던 최진실을 실물로 봤다는 것은 꽤나 운수가 좋았던 날이며, 그가 신이 났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최진실이 서울대에서 촬영을 했던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촬영허가도 잘 안 나오고, 그림도 꿀꿀해서 촬영장소로는 선호되지 않는 곳이 서울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친구는 최진실이 실물로 보니 얼굴이 주먹만 해서 신기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같은 남자가 보더라도 임성민이 정말 멋있더라!’ 하면서 키 크고 인물이 훤한 꽃미남 임성민의 수려한 외모를 칭송했습니다. 친구가 남자였기에 여주인공이 눈에 띄었던 것이 인지상정이었겠지만, 남주인공 임성민의 우월한 외모가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임성민이라는 꽃미남 배우를 되새겼는데, 며칠 후 스포츠신문에 간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며칠 전에 드라마 촬영을 했던 배우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지병이 있었던 임성민은 투병생활을 지속했고, 마침내 고인이 되었다는 뉴스를 2년 후에 들었습니다. 눈에 띄는 꽃미남이기에, 데뷔이래 저절로 관심이 쏠렸던 임성민을 그렇게 떠나보내면서 허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ChuecKRUP0

     

    제 블로그를 종종 방문해서 제가 쓴 조잡한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TV탤런트님의 유튜브입니다. 고마움을 기리면서 여기에 인용합니다.

     

    임성민은 딱 주연급 배우입니다. 선이 굵은 꽃미남에 인상도 강렬합니다. 캐릭터 자체가 주연으로 쓰지 않으면 동료 배우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과거 장동건이 주연으로 낙점되면 상대 여배우가 기피했던 이유가 장동건의 우월한 외모에 빛이 가렸기 때문입니다. 임성민은 세련되면서도 중후한 캐릭터입니다. 정우성은 경쾌한 꽃미남이고, 조인성은 세련되고 화려한 꽃미남이며, 장동건은 화려하면서도 반항아 이미지가 강한 꽃미남인 것과 비교됩니다. 훤칠한 키가 더해져서 수트핏이 최고였습니다. S급 여배우의 상징이 화장품광고모델이라면, S급 남배우의 상징은 과거에는 단연 양복광고모델이었습니다. 임성민이 양복광고의 모델이었던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주연급 꽃미남 배우가 에로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실제로도 에로영화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변강쇠 시리즈의 이대근이나 토속적인 에로영화에 많이 출연한 김진태, TV에서는 그다지 활동이 뚜렷하지 않은 하재영 등이 에로영화의 주연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임성민이 에로영화의 주연을 1980년대에 꽤나 많이 했습니다. 노주현, 한진희, 그리고 이영하 등 당대의 꽃미남들이 주류인 시대였다지만, 임성민도 주연급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다음 유튜브는 장사의 꿈이라는 에로영화에 출연한 생전의 임성민을 감상할 수 있는 동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R25JMZhQjo

     

     

    임성민의 후일담을 보면, 작품 자체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에로영화도 가리지 않고 출연을 한 것이라 합니다. 당시 TV에서도 꾸준히 주조연급으로 출연하던 임성민이라출연작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고, 전술한 주연급 남배우의 당시 관행상 에로영화까지 출연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당시 광고계의 블루칩이었던 점을 아울러 고려하면, 임성민 자신의 열정이 다작으로 반영되었고 에로영화까지 출연한 것이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작, 게다가 동시출연을 강행했던 임성민의 열정은 피로가 금물인 그의 지병인 간염을 악화시켰고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작품활동이 가능했던 배우인데,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보통 꽃미남 계보의 남배우들은 20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30대에는 내려오면서 주조연급으로 하강하는 것이 정상적인 루트임에 반하여 임성민은 특유의 중후한 분위기가 강렬했기에, 30대에 이르면서 오히려 그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그래서 특유의 연기욕심과 결합하여 그의 요절을 초래한 것입니다. 불행한 그의 개인사와 겹쳐서 임성민의 비극이 더욱 안타까움을 짙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비운의 꽃미남으로 후세에 깊이 자취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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