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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의 미녀, 염복순>
    7080 배우/7080 여자배우 2024. 8. 1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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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자의 전성시대!

     

    1990. 1. ‘민정, 공화, 민주 3당 합당에 대하여 당시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습니다. 그와중에 한겨레신문의 인기코너였던 한겨레그림판을 그리던 박재동 화백은 민자의 전성시대라는 풍자그림으로 3당 합당에 대하여 강한 비난을 하였습니다. 물론 당시 대학가는 진보색채가 뚜렷했기에, ‘3당 야합이라면서 맹렬히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20대 운동권 학생들 대다수는 정작 민자의 전성시대가 패러디한 영자의 전성시대를 잘 몰랐다는 것이 뭔가 김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조선작이라는 원작 소설가도 잘 몰랐다는 것, 그리고 소설 원작이 영화화 되었다는 것, 나아가 송재호라는 당시 중견배우와 은퇴한 미녀 여배우 염복순이 주연을 했다는 일련의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것이 뭔가 의외를 넘어 허망했습니다.

     

    어떤 표현을 쓰면서 그 표현의 어원까지 일일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만, 원작의 주제가 엉뚱하게 활용(!)되는 것은 뭔가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나 영자의 전성시대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유사하게 비극적인 플롯이 담긴 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수와 영자, 두 밑바닥 인생의 청춘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역설적인 제목으로 집필된 소설이 영자의 전성시대입니다. 그리고 당대의 명배우 송재호와 화장품 광고모델까지 한 당대의 미녀배우 염복순이 각각 밑바닥인생으로 출연하면서 영화화한 작품이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영화로, 그리고 소설로 모두 완독한 작품이었습니다. 조선작이라는 특이한 이름, 그리고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잠깐이나마 등장한 야한장면에 꽂혀서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한 우수(憂愁)의 사슬이라는 소설을 탐독하였습니다. 물론 야한 장면도 당연히 등장합니다. 요즘에는 신문 연재소설 자체가 거의 없지만 그 시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lQXGPGuUFk

     

     

    요즘은 출판시장 자체가 거의 와해 분위기이지만, 당시만 해도 세계문학전집’, 그리고 한국문학전집과 더불어 한국현대문학전집을 월부책장수가 각급 학교를 누비며 열심히 팔던 시기였습니다. 각급 학교에서 권장도서라는 이름으로 일독을 권하던 시대였습니다. 조선작이라는 이름이 특이하기에, 저는 그 유명한 영자의 전성시대를 탐독했습니다. 그 시절에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낙인이 찍힌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한내용이 담긴 소설이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영자의 전성시대는 비극적인 사랑, 게다가 눈물샘을 마구 찌르는 소설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대전의 성보극장이라는 동시상영관에서 본 영화도 대동소이한 비극을 담았습니다.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가장 운수가 나쁜 날인 것처럼, 보는 내내 불편함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염복순이 출연하였기 때문입니다. 염복순은 요즘 말로 까도녀에 가까운 세련된 미녀였습니다. 사극에서는 양반가의 규수나 귀족으로 많이 출연했습니다. 맑고 세련된 도회풍의 마스크가 고급스럽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영자의 전성시대는 물론 전설의 고향이어도편에서는 밑바닥인생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명품배우였습니다. 염복순은 한마디로 전천후 배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연급 배우는 연속극을 선호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정출연으로 목돈을 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설의 고향’, ‘베스트극장등과 같은 단막극은 야외촬영의 부담에, 출연료라는 기피요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염복순은 연속극은 물론 단막극에서도 꾸준히 출연했습니다. 한마디로 연기가 되는 배우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lPoTeWINSg

     

     

    연기의 스펙트럼도 넓고, 미모도 출중하기에 염복순은 꾸준히 주연급 배우로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S급 여배우가 독식하는 것이 화장품 광고모델입니다. 염복순은 트로이카, 즉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보다는 한 등급 아래의 배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력과 미모의 힘으로, S급이 아닌 A급 여배우임에도, 화장품 광고모델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염복순은 30줄에 이르러 청춘물로 승부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캐스팅에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연급 미녀 여배우는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자의반 타의반 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염복순은 영화판은 물론 TV에서도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은퇴를 한다고 하여 추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염복순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 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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