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주일을 키운 사람들>
    7080 코미디언/7080 남자코미디언 2020. 12. 9. 15:22
    728x90
    반응형

    1980년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인 5.18이 있는 해이지만, 나에게는 이주일이라는 큰 코미디언을 만난 해이기도 했다. 그 해 만난 이주일에 대한 신선한 충격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근 20년이 된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올드보이 정도만 기억을 하겠지만, 당시 TBC에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이라는 코미디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서 이주일을 만났다. 당시에는 이름을 모르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정확하게 이름을 안 ‘수지 큐’라는 반주에 맞춘 이주일의 오리걸음이 대박이었고, 빠진 앞머리를 흩날리면서 내뱉는 엉뚱한 소리에 하루종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 눈을 까뒤집으면서 ‘운명하셨습니다.’를 연발하는 엉뚱함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당시 나는 대전에서 살았는데, 문제의 TBC는 볼 수가 없었다. TBC가 오직 수도권에서만 방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 TV안테나에 우연치 않게 TBC의 전파가 걸려서 보게 된 것이다. 지금 케이블TV시대에 'TV안테나'라는 말 자체가 올드보이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TV를 보려면 TV안테나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대전에서는 그놈의 TBC를 보기가 하늘의 별처럼 어려웠다. 일부에서는 TV안테나를 두 개를 달거나 서울방향으로 TV안테나를 돌려서 보고는 했다.

    아무튼 이전의 이기동, 배삼룡 등과는 또 다른 코미디를 맛보고는 어떻게 하면 이주일의 코미디를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TBC의 절벽은 생각만큰 이주일을 자주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부모님을 졸라서 TV안테나를 사달라고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이주일에 대한 추억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샘솟는다. 그런데 그가 떠난 지 근 20년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자칭 ‘이주일을 키웠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코미디계의 대부인 이주일이 누가 키워서 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1. 하춘화

    하춘화가 이주일을 키웠다는 사실 자체는 일정 부분 사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주일이 무명인 시절에 하춘화 리사이틀 전용 사회자로 근 10년을 일하면서 금호동에 집을 마련했다는 이주일의 생전 회고는 이미 여러 차례 미디어에 등장을 했고, 이주일 본인도 인정을 하였다.

    그런데 이주일과 하춘화 둘을 비교하자면, 이주일이 압도적으로 큰 연예인이다. 물론 하춘화도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대형가수임은 분명하지만, 이주일처럼 원탑으로서의 위상은 갖지 못했다. 하춘화가 이주일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주일이 코미디언으로 전성기를 누릴 무렵에는 그 지위가 역전된 것이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무명의 아픔이 있기 마련인데, 듣기 좋은 육자배기도 한 두 번이라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하춘화가 이주일의 무명시절을 언급하자 이주일도 하춘화에 대하여 나름 반감이 생긴 것은 당연지사다. 하춘화가 이주일의 초창기에만 키워준 것이고, 나중에는 이주일이 하춘화보다 더 컸다. 그래서 더 이상 키워줄 일이 없음에도 이주일을 키워줬다는 멘트로 지속적으로 이주일을 자극하였고, 둘은 근 10년간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는 하춘화가 화해를 시도했고 둘은 화해를 했다고 한다.

    2. 김경태

    PD가 직접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 김경태PD는 자기가 마치 코미디언인 것처럼 직접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을 했다. SBS의 초창기에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데, 그는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안고서도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 사람이다.

    김경태PD가 위에서 언급한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의 담당 PD였다. 이주일의 자연스러운 코미디가 기왕의 억지스러운 코미디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코미디라는 점을 주목하여 이주일에게 날개를 달아 준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러나 하늘은 김경태PD처럼 유능한 사람을 너무 빨리 데려갔다.

    3. 최봉호

    최봉호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1960년대부터 연예계의 대부로 명성이 높았다. 요즘 말로 일종의 연예기획사의 사장 정도 되는 사람인데, 유명가수 나미의 남편으로 소개를 해야 요즘에는 더 이해가 빠르리라. 그는 신동운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의 빛나는 명저 ‘판례백선 형법총론’에서 교사범의 에피소드인 ‘혼내주라’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무상 공모공동정범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기에 교사범사례는 흔하지 않은데, ‘혼내주라’라는 멘트가 교사범이 되는가에 대한 리딩 케이스를 만든(?) 사람이다.

    위에서 언급한 하춘화의 공연에서 사회자를 보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최봉호다. 최봉호는 이주일이 땡겨서(!) 이주일을 쓴 것이 아니라 인기가수 겸 명MC 박상규의 대타로 이주일을 추천한 것이었는데, 이주일의 인생을 바꾼 사람이 되었다.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스타나 연예인 중에서 대타로 홈런을 친 사람이 많은데, 이주일은 대타로 홈런을 친 인생이었다.

    4. 이상해

    위에서 언급한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서 이주일과 콤비로 등장했던 코미디언이다. 비록 코미디언의 커리어는 이주일에 훨씬 못 미치지만, 나름 코미디언으로는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해가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이주일을 키웠다고 주장을 하기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주일과 콤비로 등장한 프로그램이지만, 당시에도 메인은 이주일이었고 이상해는 분명 서브였다. 1980년 이후에도 이상해가 이주일을 커리어상으로도 능가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자신을 자화자찬하면서 ‘이주일을 키웠다.’고 발언을 해서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당시를 회고해 봐도 이상해는 이주일을 키웠다고 보기 어려웠고, 동료이자 경쟁자를 키운다는 것은 연예계의 생리상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