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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항기의 이 노래 : ‘별이 빛나는 밤에’>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5. 1. 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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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백의 한시를 보노라면 그 어렵고 난해한 한자어가 예술로 변신하는 마법을 봅니다. 한자어가 난무하는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정철의 관동별곡에서도 한자는 예술로 변신하는 마법을 보입니다. 영어라고 다른 것은 아닙니다. 일상의 언어를 예술로 변신시키려는 노력을 추구한 대표적인 인물이 제임스 조이스와 더불어 아일랜드의 거물 문인으로 꼽히는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지향하면서 언어에서 예술을 추출하는 노력을 그의 인생 내내 경주하였습니다. 일상에서 예술을 추출한다는 것은 비범한 재능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하여 후세는 그를 탐미주의(Aestheticism)의 간판으로 추앙합니다.

     

    그러나 와일드는 어마어마한 글재주에 비하여 작품수는 많지가 않습니다. 이런저런 문제로 창작에너지를 쏟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촌철살인하는 명언제조기로 더 명성이 높습니다. 그의 어록을 보더라도 비범한 발상과 악마의 글재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주가 후천적인 노력보다 중요하며, 평범한 대중은 자신과 같은 천재과의 비범한 능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생각이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예술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중가요입니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심오한 철학은 물론 평범한 대중의 망상도 변신이 가능한 생각의 용광로입니다.

     

    밥 딜런처럼 음유시인의 철학을 가사에 담을 수도 있지만, 그냥 좋아하는 사람을 무작정 그리는 막연한, 실은 유치하기까지 한, 내용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시각에서 보자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연정을 노래하는 고려속요 정읍사는 평범 그 자체일 것이고, 윤형주가 번안곡으로 부른 두 개의 작은 별도 무미건조할 것입니다. 윤형주의 별 헤는 밤도 뭔가 예술적 가치를 증명한 것으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이나믹한 인생을 예술로 포장하는 작업이 없다면 시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가요는 대중의 시각과 미각에서 소비되는 재화입니다. 윙크의 얼쑤처럼, 달을 보고 연인에게 현실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여인들의 속물근성도 대중예술로는 충분히 수용가능합니다. 실은 이것이 대중가요의 힘입니다. 한마디로 대중가요의 가사는 접근성이 낮은 것입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달, 그리고 별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연인, 또는 다가가기 어렵거나 만날 수 없는 연인으로 비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일컬어 식상한 비유라 하여 사비유(死比喩)’라 합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면서 두손 모아 소원을 비는 대상이 별, 그리고 달인 것도 식상하고, 저 달, 그리고 저별을 님으로 생각하면서 애정을 표시하는 것도 식상합니다. 윤항기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그 연장입니다. 그 시절을 기준으로도 식상했습니다. 그 시절 히트곡 강부자의 달타령이나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생각해도 흔하디 흔한 가사입니다. 더군다나 별이 빛나는 밤에로 번역된 ‘Merci, Chérie(고마워요, 연인이여)’가 인기를 끌던 경음악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qz6XGEazo4

     

     

    그런데 말입니다! 수천년 전부터 먹던 밀과 쌀을 아직도 먹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 쌀과 밀을 먹는 것이 일상의 일부이듯이, 사랑도 사람의 일상입니다. 무수히 반복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만남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는 반복되는 사랑의 모습도 일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일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진귀할 수도 있지만, 눈앞의 밥처럼 매일 보는 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겹다가도 없으면 허무함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것이 사랑입니다. 신데렐라처럼 기적을 이룰 수도 있고, 자명고를 찢는 낙랑공주처럼 목숨을 걸 수도 있습니다. 카튜샤를 찾아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네흐돌류도프 백작처럼 인생을 포기할 각오를 다지게도 합니다. 그것이 평범한 사랑의 본체입니다.

     

    너와 내가 맹세한 사랑한다던 그말

    너와 내가 맹세한 사랑한다던 그말

    차라리 듣지 말 것을 애당초 믿지 말 것을

    사랑한다는 그말에 모든 것 다 버리고

    별이 빛나던 밤에 너와 내가 맹세하던 날

    사랑한다는 그 말은 별빛따라 흘렀네

     

    별을 두고 맹세한 사랑은 실은 신사협정만도 못한 약속에 불과합니다. 사랑의 약속 자체는 법원에서 구제할 수도 없는 공허한 약속에 불과합니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 법률적 의미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별빛따라 흐르고 마침내 추억으로 변이되어도 긴 한숨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사랑은 목숨보다 소중하기도 하지만, 공허한 약속일 수도 있습니다. 무의미한 인생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솜사탕처럼 탈콤하다가도 그 어떤 약보다도 쓰디쓸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환희일 수도 있지만, 고통의 화신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그 어떤 것이 사랑만큼 다이나믹합니까! 그래서 딱 50년이 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어제밤에 나온 노래처럼 따끈따끈한 일상의 사랑의 진가를 배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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