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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 소시지의 추억>
    7080 이야기거리 2022. 1. 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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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흐르면 사어(私語)가 저절로 발생합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들리던 말이 미제장수또는 미제아줌마입니다. 주로 미군부대 PX 등에서 흘러나오는 군용미제물품을 빼돌려서 파는 장사꾼들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제는 똥도 좋다.’는 말이 공공연히 시민들이 흔하게 하는 말일 정도로 미제물품의 품질은 국산의 그것을 까마득히 넘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살던 대전 문화동 천근에서도 문제의 미제아줌마가 살았습니다. 미제아줌마의 아들은 제 2년 후배로 자주 어울려 놀기도 했던 사이인지라 그 미제아줌마도 저를 잘 알았습니다. 가끔 저를 보면 미제 초콜릿이나 과자 등을 주기도 했는데, 진한 초콜릿의 맛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국산과자와 다른 풍미가 무척이나 독특했습니다. ‘미제아줌마의 집에서 봤던 미제물건들은 지금 생각해도 국산과는 차원이 다른 먼 나라의 물건들처럼 수준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가 혼자 있는데, 같이 밥을 먹자고 하기에 후배의 집, 그러니까 그 미제아줌마의 집에서 밥을 먹다가 미제 햄과 밥을 먹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분홍소시지, 즉 분홍색으로 된 소시지로 소풍용 김밥에 쓰는 소시지, 그리고 계란에 입혀서 부치면 꿀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소시지만이 소시지라고 알았습니다. 실은 그 이전에 햄과 소시지를 잘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제 나이와 어금지금 비슷한 세대는 그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아무튼 그때 처음으로 국내에서 파는 분홍소시지는 진정한 소시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당시 아이들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분홍소시지가 실제로는 고기가 아니라 생선, 즉 어육에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 밀가루떡이 그 실질인 어육소시지임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어육소시지의 제조법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고기로 가공해서 만든다고 당시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란에 입힌 분홍소시지는 당시 최고의 도시락반찬으로 분홍소시지 반찬을 싸온 아이들은 공연히 목에 힘을 줄 정도였습니다.

     

    사람의 입맛이 간사한지 제가 인격수양이 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이후에는 왜 그렇게나 분홍소시지가 맛이 없는지 어쩌다가 어머님이 큰맘 먹고 부쳐주어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실은 그 이후부터 분홍소시지를 먹다보면 은근히 밀가루의 역한 냄새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먹거리도 마음가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잘살아서 그런지 아니면 정통소시지나 햄과 경쟁에서 밀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이후 분홍소시지는 빛의 속도로 밀렸습니다. 중학교 이후 친구들도 분홍소시지에 대한 반응이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요즘 어쩌다가 슈퍼마켓이나 마트에 가보면 식육코너에 아직도 분홍소시지 자체는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분홍소시지만이 진열되어 있지도 않고, 구석자리에 진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홍소시지를 통해서도 추억의 편린을 반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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