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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때 그 시절의 프로그램 ‘노래하는 삼천리’의 감상기>
    7080 이야기거리 2022. 2. 19.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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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시절인 1978년을 배경으로 제작된 희귀한 영상 노래하는 삼천리가 유튜브에 떠 있길래 관심 있게 봤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당대 최고 코미디언 땅딸이이기동과 패션모델과 가수, 그리고 MC로 종횡무진했던 한계순이 진행했던 노래하는 삼천리는 당시에 유행(?)했던 삼천리를 의식해서 작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전설따라 삼천리’, ‘마이크따라 삼천리’, ‘웃음따라 삼천리삼천리가 꽤나 인기였습니다. ‘삼천리 자전거라는 상호도 물론 있었습니다.

     

    아무튼 노래하는 삼천리는 당시에 수출역군으로 불리는 전국에 소재한 공장의 근로자들을 위문하는 차원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돈이 안 되는 프로그램에 유명가수가 출연할 이유가 없지만, 당시에는 슈퍼갑이었던 방송국의 위상에 당시 인기가수가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출연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립싱크를 위한 음향장치가 없어서 집음까지 확실하게 들리는 야외현장에서 방송국의 전속악단이 반주하는 상황에서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당대 최고인기를 구가하던 연예인이 출연한 근본적인 이유는 박정희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기인합니다. 당시 교과서에서도 수출은 선이고 수입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가난한 나라이기에 혼분식이 정당하다는 기상천외한 논리가 지배했었고, 양담배라 불리는 수입담배를 피우면 나쁜 사람이라는 황당한 논리가 버젓이 국민캠페인으로 계몽되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축장려운동이 벌어져서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저축을 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막걸리를 마시던 시절의 일화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LqpY1AH3cI

     

    따끈따끈 담요’, ‘어디론지 멀리 깨고(가고) 싶구나’, ‘꿍따라닥닥 삐약삐약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뜯어뜯어)’, ‘또기니끼니 딱이야요등 무수히 많은 유행어를 남기면서 당대 최고 코미디언이었던 고 이기동은 사업을 대차게 말아먹고 구속까지 되었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수모를 겪다가 고인이 된 비운의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계순은 지금은 망한 케리브룩이라는 히트CM의 모델로도 유명했던 만능연예인이었습니다. 당대 최고 인기가수 최병걸과의 화려한 결혼으로도 유명했는데, 후속곡의 히트 스트레스를 술로 풀던 최병걸이 간암으로 일찍 사망하면서 인생이 꼬인 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Rv5NOFy41g

     

    맨 처음에 등장하는 가수도 비운의 가수 오정선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유명 연예인의 부고는 기사에 등장합니다. 인터넷에는 그가 죽었네 살았네 갑론을박이 행해질 정도로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인물이지만, 번안곡 마음을 부를 당시에는 꽤나 인기를 끌었던 가수였습니다. 번안곡이면서도 마치 국내가요인 것처럼 불리던 시절입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https://www.komca.or.kr)에서 오정선의 마음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원저작권자에게 정당한 저작권을 지급하지 않아서 저작권등록이 거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가수는 이예나입니다. ‘불란서는 당시에 프랑스를 표기하던 법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주류적인 표기는 프랑스였지만, 당시 기준으로도 노땅그룹에 속한 분들이 불란서로 불렀습니다. 스위스를 서서’, 오스트리아를 오지리’, 네덜란드를 화란으로 부르는 등 지금은 어색한 표기방법이 그나마 명맥을 이루던 시대였습니다. 아무튼 이예나의 불란서 영화처럼은 당시 라디오에서 꽤나 들렸던 노래였습니다. 가끔 주말 버라이어티쇼에서도 등장했는데, 이예나의 세련된 미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이예나는 후속곡이 뜨지 못해서 영영 가요계에서 보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나 가요무대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습니다.

     

    그 뒤에 등장하는 하사와 병장목화밭이 대표곡인 가수였습니다. 통기타가수의 시대를 대변하듯이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당시는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중고생도 부모님을 졸라서 통기타를 즐겨 치던 시대였습니다. 사소한 것도 자랑거리인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통기타를 그렇게나 동경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들이 통기타 자체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아무튼 하사와 병장해남아가씨를 연달아 부릅니다.

     

    이 유튜브에 이어진 노래하는 삼천리방영분에는 당대의 인기가수 윤세원, 전영 등이 차례로 출연합니다. 거의 주말 버라이어티쇼 수준입니다. 그만큼 방송국에서 배려를 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정권차원에서 수출증대가 지상목표였다는 당대의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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