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이 노래 : ‘민들레 홀씨되어’>

지금은 창작곡을 내세운 가요제 자체가 시들하지만, 1970 ~ 80년대에는 대학가요제부터, 해변가요제, 강변가요제 등 각종 가요제가 홍수처럼 개최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곡이 금상, 은상이나 동상 등 차순위 수상곡보다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가령, 1988년 대상곡인 신해철의 ‘그대에게’는 아직까지도 한국가요계에서 압도적인 인트로를 과시할 정도이지만, 차순위 곡은 ‘그대에게’의 존재감이 견줄 여지가 없습니다. 실은 차순위 곡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아예 대상곡만 따로 정리한 경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법칙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에도 예외는 있기 마련입니다.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되어’는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곡이지만,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약한 박미경 자신의 후광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상위 순위로 입상한 곡보다 더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단 ‘민들레 홀씨되어’는 고급스러운 슬로우 고고 리듬에 맞춘 서정적 분위기가 일품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흩날려서 시민들에게 눈총을 받기 마련인데, 민들레 홀씨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의 반전을 이루어 연인에 대한 사랑이 바람에 퍼지듯이 날아간다는 서정시 같은 유려한 가사가 더욱 고급스러움을 배가시킵니다. 1985년 강변가요제 당시에 박미경이 이 노래를 부를 당시에는 뭔가 투박함이 있었지만, 그 이후 새롭게 녹음한 버전은 세련된 맛이 더욱 녹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유명 작곡가 이범희가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와 같이 자신이 작곡한 곡이라 주장을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하여 곡의 캐릭터나 이범희의 작곡 스타일상 이범희가 작곡했을 가능성 자체는 높지만, 법률적으로 이범희가 이정석에게 작곡한 곡을 제공한 증거가 없기에 승소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다는 요지로 글을 썼습니다.

 

https://blog.naver.com/kirbypuckett/222386347262

 

이범희는 슬로우 고고 리듬의 발라드곡을 유달리 선호를 하며, 선저후고의 곡의 전개, 그리고 후크 부분에 연속적인 고음의 배치를 하는 작곡 스타일이 강합니다. 그가 히트시킨 일련의 히트곡 이용의 ‘잊혀진 계절’, 혜은이의 ‘독백’ 등 상당수의 노래가 이런 전개를 합니다. 그리고 이범희는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답게 피아노 선율을 중시했습니다. 아무튼 발라드곡 ‘민들레 홀씨되어’로 뜬 박미경은 후일 격렬한 댄스곡 ‘이브의 경고’나 ‘이유같지 않은 이유’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강변가요제에서는 뭔가 어색하고 뻘쭘했는데, 댄스가수로 화끈하게 변신해서 격렬한 댄스를 선보인 점이 무척이나 재미가 있습니다. 인생의 반전을 준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범희가 작곡한 노래는 대부분 따라부르기가 어렵습니다. 고음이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민들레 홀씨되어’가 실제로 이범희가 작곡한 것이 맞다고 보는 근거가 지극히 ‘이범희스러운’ 어렵게 배치된 고음의 배열입니다. 그런데 대중이 노래방에서 부를 때 이범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저 좋으면 그만입니다. 문학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이미 대중의 소유가 되듯이 대중가요가 노래방에 설치되는 순간 마이크를 잡은 국민의 소유가 됩니다. 노래방에서는 작곡가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노래방에서 제가 이 곡을 자주 부르는데, 부를 때마다 ‘삑사리’가 나서 주위의 눈총을 받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NbtTf9wP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