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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컵, 메르데카컵, 그리고 킹스컵>7080 이야기거리 2022. 6. 6. 12:18728x90반응형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이 ‘스즈키컵’에서 우승하자 베트남 국민들은 광란에 가까운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면서 대다수 한국인들은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스즈키컵’이 뭘까, 하는 생각이고, 둘째는 박항서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절대다수는 후자의 생각이었지만,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호의 승선 이전에 ‘스즈키컵’이라는 존재 자체를 거의 몰랐던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수준이었습니다.
‘스즈키컵’은 동남아국가들 간의 A매치 컵대회입니다. 그러나 월드컵과는 거의 무관한 동남아국가들만의 리그, 즉 ‘그들만의 리그’이기에 월드컵에 단골손님으로 참가하는 한국으로서는 속칭 ‘듣보잡대회’인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박항서 감독 때문에 ‘스즈키컵’을 비로소 안 것이 대다수 국민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나름 아시아의 축구강국 한국도 ‘스즈키컵’과 같은 컵대회는 아니지만, 나름 컵대회 비스므레하게 열었던 친선축구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박스컵’ 국제축구대회입니다.
출발은 ‘박 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였습니다. 당시에 ‘컵 쟁탈전’을 두고 ‘그릇 따먹기 대회’라는 요즘 말하는 ‘아재개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컵’이라는 명칭이 문제입니다. 당시에도 ‘대통령컵’이면 되지 왜 ‘박 대통령’이냐고 비판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 담임 선생님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요즘 국제대회를 유치하면서 만약 ‘문재인컵’이나 ‘윤석열컵’으로 이름을 짓는다면 수긍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특정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면서 군함이나 잠수함의 이름을 짓는 경우는 있어도 특정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회를 여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로 변신을 합니다. 당시는 영어를 쓰면 ‘나쁜 놈’으로 몰리던 시절인데 정부가 앞장서서 ‘컵’으로 쓴다고 비판도 있었기에, 이름을 바꾸는 김에 아예 ‘컵’도 ‘배’로 바꿨습니다.
축구시합에서 명칭은 그냥 참고사항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그 대회에 참가팀의 수준입니다. 그 수준을 이해하려면 당시 한국축구의 위상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슬프게도 당시 한국은 축구변방국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유치원 동요처럼, 월드컵 참가가 지상목표인 축구 수준의 나라가 당시 한국의 현주소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IOC에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종목입니다. 혹자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려고 축구를 이용했다는 비난을 하지만, 축구 자체의 위상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축구사랑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박스컵 축구는 무늬만 국제축구대회였습니다. 실은 초청에 의해서 시합이 열리는 친선대회였습니다. 초청대상은 외국의 A대표팀인 경우도 어쩌다 있었지만, 대다수가 외국의 프로구단이었습니다. 독일같은 경우에는 리저브팀, 즉 2군팀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꾹꾹 감추고 당시 TV에서는 마치 외국의 A팀이거나 프로리그의 1군팀이 참석하는 것처럼 요란스레 선전을 했습니다. 당시 국가차원에서 외화벌이에 매진하는 상황이지만, 나름 정부에서는 돈을 써서 초청비용을 포함한 참가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국제축구가 아닌 친선축구, 초청축구인 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국제적’ 성격의 축구대회였기에, 국민들의 성원은 대단했습니다. 그 유명한 차범근, 이영무, 허정무, 김황호 등 쟁쟁한 멤버가 총출동한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박스컵을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당시 ‘화랑’과 ‘충무’라는 국가대표팀의 이원적 구성입니다. 당시 한국축구 자체가 국제적으로는 듣보잡수준인데, 국가대표팀을 2개씩이나 만든 것입니다. 박항서 감독은 2팀인 ‘충무’의 단골멤버였습니다.
박스컵은 이렇게 월드컵과 무관한 한국축구가 나름 국민들의 축구갈증의 해소를 위하여 만든 대회였습니다. 요즘같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축구, 그리고 손흥민의 PL 등의 수준 높은 경기가 넘치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그나마 ‘국제대회’의 외투라도 있는 대회가 생긴 연유입니다. 메르데카컵은 말레이시아, 킹스컵은 태국에서 열린 대회로서 박스컵과 대동소이한 대회였습니다. 나름 이들을 두고 ‘아시아 3대 축구대회’라고 당시 언론은 포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순진하게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제 박스컵은 추억에서만 존재하는 축구대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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