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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훈아 이야기>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0. 11. 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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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훈아는 왜 국민가수로 불릴까? 왜 히트곡이 그렇게나 많을까? 왜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을까? 나훈아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훈아가 가요계의 한 획을 선명하게 그은 가요계의 거인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나훈아가 국민가수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나훈아를 국민가수로 만드는 요소인가?

     

    나훈아가 세월이 지나도 국민가수로서의 명성을 잃지 않는 것은 우선 팔색조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그의 독특한 창법에 기인한다. 그의 창법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비교적 중후한 저음이다. 그의 히트곡 ‘머나먼 고향’의 앞부분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라는 부분에 현저하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중후한 저음처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중후한 저음처리만을 고집했다면, ‘갈대의 순정’을 부른 최일남의 아류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바로 경쾌하고 동시에 간드러진 고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훈아의 창법의 그 두 번째 특징은 간드러진 고음이다. ‘십팔세 순이’에서 ‘가야해, 가야해 나는 가야해. 순이 찾아 가야해!’하는 부분은 그의 간드러진 고음의 절정을 이룬다. 위에서 본 ‘머나먼 고향’에서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부분은 그의 능숙한 고음처리의 능력을 원없이 보여준다. 셋째는 나훈아만이 할 수 있는 ‘꺽는 음’이다. 그의 히트곡 ‘울긴 왜 울어’를 본다. ‘울지마아~ 울긴 왜 울어. 바보처럼~ 울긴 왜 울어’ 하는 부분에서 나훈아 특유의 ‘꺽는 음’이 명쾌하게 보인다. 예전 트로트가수들 중의 상당수는 밋밋한 옛날의 트로트곡을 별 무리없이 적당히 콧소리를 섞어서 불렀기에 그다지 강한 개성이 없었으나, 나훈아에 이르러서 그 이전까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했던 이 꺽는 음을 개발하였고, 바로 이것이 나훈아를 나훈아로 만드는 포인트이다. 구태여 개성이 있는 창법은 ‘신라의 달밤'을 부른 현인이 있지만, 현인은 ‘떠는 음’이지 ‘꺾는 음’은 아니며, 콧소리가 지나친 면이 있다.

     

    나훈아가 국민가수가 된 두 번째 이유는 걸출한 음악실력이다. 나훈아가 2009년 현재까지 발표한 곡은 약 2천곡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1/3정도인 그 중 약 8백곡 정도가 자작곡이라 한다. 그리고 나훈아의 빅히트곡의 상당수도 자작곡이다. 나훈아는 조용필과 더불어 자작한 곡도 엄청나고 그 중 히트한 곡도 엄청나다. 이것은 탁월한 나훈아의 음악적인 감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나훈아는 작곡가로도 탁월한 실력이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실은 나훈아 자신도 굳이 이것을 대중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은 죽어서도 가수라는 작곡가보다는 가수로 불리기를 선호한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나훈아의 가수로서의 유별난 자존심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자신의 특색을 잘 드러낼 만한 뛰어난 작곡 능력이 오늘의 나훈아로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마치 양복쟁이가 자신의 옷을 만드는 것처럼, 나훈아는 자신만이 소화할 노래를 효율적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나훈아의 히트곡은 단지 그 곡조만을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나훈아의 히트곡의 비결 중의 하나는 서민들의 가슴을 휘어감는 가사에 있다. 가령, 나훈아의 고향시리즈를 보자. ‘물레방아 도는데’, ‘머나먼 고향’. ‘고향역’ 등 나훈아의 고향시리즈를 발표했던 시대적 배경은 수도권의 집중적인 개발을 비롯한 근대화의 본격적인 시동이라는 시점과 일치한다. 유행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대상을 담기마련이다. 김추자의 ‘월남에서 온 김상사’는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노래이며, 현숙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는 중동특수를 배경으로 한 노래이다. 그러나 나훈아의 가사가 유달리 공감이 가는 것은 ‘고향’이라는 한국인의 본능적인 정서의 샘을 자극하는 그 노래가사의 절실함에 있다. 나훈아는 ‘사랑’ 분야에서도 발군의 감각을 지녔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로 시작하는 ‘사랑’은 얼핏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절실한 사랑의 감정을 잘 그려냈다. 사랑은 달콤한 듯하지만, 씁쓸하기도 하고, 시큰둥하다가도 더할 나위없이 간절한 변덕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랑의 순간에 저 노래처럼 절묘한 묘사는 어려울 것이리라. 또한 나훈아의 대표곡 ‘해변의 여인’을 보면, 해변의 추억과 낭만이 감미로운 음악에 잘 실려있다. '잡초'에는 서민의 애환을 짧은 노랫말로 잘 그려냈다. 이처럼 나훈아의 노래는 상당수 가사와 곡이 강한 결합력을 보이는 밀도 높은 노래가 다수 존재하는바, 가사부터 리듬까지 완성도가 뛰어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나훈아를 국민가수라는 자리로 올려놓은 비결이다. 남진이라는 평생의 라이벌의 존재도 나훈아의 완성도 높은 노래의 원인으로 꼭 지적하여야 할 요소이다.

     

    비록 부차적인 이유이기는 하지만, 나훈아의 가수로서의 성공은 엉뚱하게도 그의 불운한 결혼생활과도 관련이 있다. 나훈아의 사생활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김지미라는 유명 연예인과 결혼생활을 하였고, 후배 여가수와 결혼생활도 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그의 결혼생활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2008년에 사생활과 관련한 황당한 소문이 있어서 기자회견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 이전에는 후배 연예인의 여자를 후렸다는 소문까지 있기도 하였다. 전후맥락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일련이 과정을 나훈아가 의도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다. 노이즈 마케팅의 대표적인 것으로, 예전에 B급 에로배우나 신인가수 등 무명의 여자 연예인이 톱 스포츠스타와의 염문설을 의도적으로 기자에 흘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스타들을 한편으로는 동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질시한다. 스타들이 부와 명성을 쌓는 것을 용인하면서도 부러움을 넘어 시샘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들의 불운한 사생활에 대하여 일면으로는 동정을, 타면으로는 쾌재를 부르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스타들을 더욱 대중들 속으로 이끄는 계기로 만든다. 스타들이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 이른바 '용각산 인생'을 사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여 인기의 하락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물론, 나훈아의 경우에는 출중한 노래실력과 빼어난 노래가 바탕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훈아의 굴곡있는 사생활이 대중의 시선을 끄는 것에 기여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나는 나훈아의 '18세 순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남자들이라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순이 찾아 가는 것'에 그쳐야 한다. 18세라면 대략 고교생 정도인데, 남자들이 '순이 찾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진도(!)를 뽑으면, 청소년보호법이나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같은 무시무시한 법률로 호되게 당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법률에서는 청소년을 만 19세 미만의 자로 정했다는 것을 상식차원에서 알고 있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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