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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고향, 구미호, 그리고 한혜숙>
    7080 배우/7080 여자배우 2023. 2. 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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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먹는 얼음이 버석거리는 팥빙수는 이채로운 맛을 주기도 합니다. 지금은 겨울의 동장군이 차츰 절정기에서 내려오는 듯하지만 그래도 겨울의 흔적은 아직 가시지 않았기에, 여름의 향연이, 그리고 여름의 풍경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인지 여름을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여름을 상징하는 전설의 고향’, 그리고 구미호가 떠오릅니다.

     

    납량(納凉)특집!

     

    納凉은 방송 외에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입니다. ‘자는 들일 납, 또는 간직할 납자로 불립니다. 납입(納入)이 대표적 용례입니다. ‘자는 서늘할 량자로 청량음료(淸凉飮料)가 대표적 용례입니다. 한자성어로는 염량세태(炎凉世態)가 대표적인 용례입니다. 납자와 량자는 개별적으로는 잘 쓰이는 한자인데, 붙여서 쓰는 납량은 잘 쓰이지 않는 이상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납량이란 서늘함을 들여놔서 간직한다, 정도로 뜻풀이가 됩니다. 아무튼 1970년대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시리즈를 방영할 때는 이상하게도 KBS에서 납량특집이라는 말을 마르고 닳도록 썼습니다.

     

    구미호는 천년 묵은 꼬리가 아홉이나 달린 여우라는 설정으로 등장하는데, 이 구미호 시리즈의 시작은 거의 예외가 없이 야심한 시각에 산길을 걷는 나그네가 덤블링을 하는 구미호에게 간을 헌납하면서 죽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구미호의 배역은 대부분 당대 KBS의 특급여배우에게 돌아갔습니다. 요즘 주연급 여배우가 구미호역할을 선뜻 할지는 미지수인데, 전속탈랜트제도(그 시절은 TV배우들을 탤런트라 불렀습니다)가 굳건했던 그 시절은 당연히 KBS의 간판여배우였던 한혜숙에게 돌아갔습니다. 실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한혜숙 이외에 다른 여배우가 구미호 배역을 맡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미호 = 한혜숙이라는 등식이 성립했습니다.

     

    그 뒤로도 KBS납량특집으로 전설의 고향시리즈를 몇 차례 방영을 했는데, 당연히 구미호 배역은 당대를 대표하는 미녀배우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장미희, 선우은숙, 박상아, 송윤아 등 설명이 필요가 없는 수준의 여배우들의 퍼레이드입니다. 그런데 이들 미녀배우들의 선구자격인 한혜숙은 왜 구미호에 출연을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한혜숙은 KBS의 간판여배우였기에, 굳이 흉악한 분장이 필수적인 구미호에 출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슬프게도 당시 드라마의 제작시스템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윤희, 장미희, 그리고 유지인이라는 세 명의 걸출한 여배우로 형성되었다는 트로이카시대는 실은 ‘TBC트로이카시대로 불리는 것이 맞습니다. 이들은 모두 TBC전속탤런트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세윤, 노주현, 한진희를 중심으로 한 당대의 꽃미남 배우들도 모두 TBC의 전속탤런트들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당시 각 방송국 드라마의 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KBS, MBC, 그리고 TBC 삼각 경쟁체제라 하지만, 실은 TBC 일강체제였습니다. 드라마의 인기를 당시 TBC가 독식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배우들은 TBC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기에, KBS는 거의 한혜숙이 홀로 간판여배우로 활약을 했습니다. 한혜숙 외에 염복순, 지미옥, 이덕희 등이 분투를 했지만, 지명도나 인기도 모두 TBC트로이카에 현저하게 밀렸습니다. 비교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MBC는 이정길이 멜로물의 간판으로 장기간 군림했으나, TBC의 꽃미남 배우들에 비하여 인기가 확연히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이정길은 하도 멜로물에 나와서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제 할머님은 이정길만 나오면 왜 쟤는 연애만 하냐?’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할 정도였습니다. 여담으로 1970년대 시골 어르신들은 드라마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그나마 MBC는 김영애, 김영란, 그리고 이효춘 등을 중심으로 여배우의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KBS는 이영하, 서인석, 그리고 늙어가면서 연기력을 과시하는 젊은 날의 김영철이 간판으로 활약했습니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KBS는 남배우, MBC는 여배우기 비교우위에 있었습니다. 물론 두 방송국 모두 TBC의 기세에 맞서기가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1963년에 개봉된 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크레오파트라의 광고사진이나 극장포스터를 보면, 모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전신장면으로 커다랗게 등장합니다. 오드리 헵번이 열연한 로마의 휴일도 그렇습니다. 주연배우의 힘을 그 시절에도 알 수 있습니다. 007시리즈는 무려 50년이 넘게 상영이 되지만, 007시리즈는 정식명칭 외에 주연배우, 가령 숀 코네리의 007’, 또는 로저 무어의 007’이라는 별칭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습니다. 주연배우가 얼마나 중요한가 영화사 스스로 자인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라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방송국이 자사 건물에 드라마를 광고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주연배우를 확대하여 전시합니다.

     

    이제 한혜숙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당시 한혜숙은 KBS의 원탑여배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혹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KBS의 드라마에 너무도 많이 출연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전설의 고향의 주연인 구미호배역으로 거의 독점수준으로 출연했다는 것은 그만큼 KBS가 간절하게 구미호 시리즈를 띄우고 싶었다는 방증입니다. KBS는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이어진 방송국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 국민으로붜 시청료를 받는 방송국이기에 상대적으로 시청률에 덜 민감합니다. 그러나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드라마광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부모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도 유명한 드라마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시절에도 드라마는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자부터 소시민까지 국민 모두가 애정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무리 KBS라도 드라마의 시청률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당시 KBS가 자신들이 애지중지했던 한혜숙을 굳이 구미호로 출연시킨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간판여배우 한혜숙을 구미호로 낙점했다는 것은 전설의 고향구미호 시리즈를 간판드라마로 여겼다는 방증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혜숙의 배우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혜숙은 그 시절 KBS를 대표하는 여배우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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