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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봉승, 그리고 한명회>
    7080 이야기거리 2023. 4. 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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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한명회는 장희빈과 더불어 사극에서 질리게 등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극 작가가 임충과 더불어 신봉승 등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소수가 관심을 쏟는 분야만 영화화나 드라마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극작가는 현대극작가보다 훨씬 숫자가 적습니다. 그 이유는 사극작가는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사부터 사극은 현저한 난이도 차이가 있습니다. 신봉승은 사극작가 중에서 1세대 작가라 불리던 분이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도 한명회가 단골손님격으로 등장하기에, 저는 한명회가 엄청난 역사적 인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에 국사 교과서에서 만난 한명회는 조선 전기 역사에서 단 한 줄만 나오는 수준의 인물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세조가 집권하게 된 계유정난의 와중에 등장하는 정도의 인물이었습니다. 역사가는 한명회의 역사적 비중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었습니다. 실제로 한명회는 정통성리학자도 아니고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그도 아니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계유정난이라는 쿠데타를 기획하고, 정난 이후에 공작정치를 실행한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한명회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정도전입니다. 실패한 개혁정치가 정도전은 조선 내내 금지어 수준으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이 제시한 정치적 이상은 조선왕조 전체에서 구체화 되었습니다. 정치제도, 조세제도, 신분제도, 군사제도 등 각종 제도의 설계는 물론 왕궁 등 각종 건축물의 설계 등 정도전의 빛나는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법치국가의 기틀을 형성한 정도전의 업적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습니다. 국사 교과서는 권력투쟁에서 패하여 죽음의 길로 떠났던 정도전에 대하여는 상세히 다루면서 쿠데타를 기획하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영의정에까지 오른 한명회는 철저히 무시하였습니다.

     

    정도전에 한정할 것이 아닙니다. 비참하게 죽은 젊은 개혁가 조광조의 개혁정치의 내용을 국사 교과서에서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귀양으로 인생의 상당 기간을 보낸 정약용의 개혁사상도 마찬가지로 국사 교과서는 상세하게 분석을 하였습니다. 한명회는 정쟁은 승리하였지만, 역사적 평가에서는 참담하게 패한 것입니다. 정적인 조광조를 아예 묻어버린 남곤은 정쟁은 승리하였지만, 당대는 물론 후대에서도 비열한 인물로 낙인이 찍혔고, 먼 훗날의 국사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작가와 역사가의 평가가 극명하게 다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작가와 역사가를 서술을 달리합니다. 작가는 극적인 요소를 포착하여 갈등을 부각시키고, 역사가는 역사의 흐름을 주안점으로 서술을 합니다. 역사적 배경과 원인을 두고도 둘은 시각을 달리합니다. 작가는 드라마 플롯상의 갈등의 소재로 활용하지만, 역사가는 역사적 흐름을 구성하는 일련의 개별적인 사건의 필연적인 배경과 원인, 그리고 향후 전개될 요소를 중점적으로 분석합니다. 작가는 중심인물 간의 갈등이 흥미의 요소겠지만, 역사가는 이합집산하는 군상들의 목적과 이해관계를 주목합니다.

     

    작가는 플롯이 중요하기에 방계인물은 과감히 생략하고 중심인물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면 족합니다. 때로는 주인공만이 활약한 것으로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끌어간 일련의 인물들과 그들이 형성한 세력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주목합니다. 작가는 역사적 인물의 미시적인 활동을 주목하지만, 역사는 역사적 인물만의 활약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역사가는 거시적인 안목을 구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극작가와 역사가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봉승은 유달리 한명회에 꽂혔는지 한명회를 마르고 닳도록 드라마, 그리고 영화에 등장시켰습니다. 실은 한명회 자체가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은 사실입니다. 비루한 신분에서 영의정에까지 오른 개인적인 삶은 당연히 굴곡이 점철되기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넘칩니다. 사극작가로서 신봉승의 구미가 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명회 개인사의 영역입니다. 한명회는 정도전이나 조광조, 그리고 정약용과 같이 조선왕조의 성격과 방향을 제시한 개혁사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명회를 발군의 사상가나 정통성리학자로 평가하는 역사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이 아무런 주목을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와 사극은 이래서 다르다는 것을 한명회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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