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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호연, 그 느림의 미학>
    7080 인물 2023. 9. 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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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가 펼쳐지는 축구장에 실제로 가보면 딱 두 가지를 보고 놀랄 것입니다. 그 첫째는 축구선수들이 뛰는 것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축구선수들이 찬 축구공의 스피드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입니다.

     

    축구선수들은 사냥감을 향해 달리는 맹수처럼 빠릅니다. 동에 번쩍하고, 서에 번쩍합니다. TV화면에서는 그런 속도감을 느낄 수 없지만, 현장에서는 그 엄청난 스피드를 체감합니다. 그러나 축구공에 비하면 축구선수들은 빠른 것도 아닙니다. TV화면에서무심코 보던 그저그런 수준의 스피드가 아님을 절감할 것입니다. 킥력이 강한 축구선수가 차는 공은 강속구 투수보다 빠르다는 스피드건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일 것입니다. 축구는 스피드 스포츠라는 진실을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단 1분이면 족합니다.

     

    그런데 축구만 스피드가 관건인 것은 아닙니다. 스피드는 달인의 상징이고, 전문가의 전리품입니다. ‘생활의 달인에서 등장하는 달인이란 똑같은 결과를 빨리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전문가란 일정한 결론을 남들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빨리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스포츠선수들이란 같은 동작을 빨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수한 학생은 같은 시간을 갖고 문제를 정확히, 그리고 빨리푸는 학생을 말합니다. 부자나 가난뱅이나 모두에게 시간은 동등합니다. 부자와 가난뱅이의 차이점은 자기에게 주어진 동등한 시간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였나에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각 프로야구단은 1983년부터 2023년까지 신입선수를 영입하였습니다. 그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각 프로야구단 모두 강속구 투수를 1순위로 뽑았다는 점입니다. 월등한 기량의 야수가 있다면 당연히 그가 1순위이겠지만(가령, 1993년 입단한 해태타이거스의 이종범’), 절대적인 비중은 강속구 투수입니다. 야구 이외의 거의 모든 스포츠가 스피드가 생명이기도 하지만, 투수의 덕목은 스피드가 최우선이라는 방증입니다. 특히 야구가 투수놀음이라는 속설(물론 야수놀음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만!)이 있는데, 그 속설의 결론을 따르자면 강속구 투수가 관건인 것이 야구가 아닌가 합니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고교야구 중에서 초고교급 투수의 타이틀을 지닌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강속구 투수였습니다. 고교야구가 쇠락한 1980년대 중반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그 시절의 강속구라 해봐야 지금과 같은 150킬로를 휙휙 넘어가는 강속구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140킬로만 넘어도 지금은 고인이 된 고 이호헌 해설위원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아무개 군은 140킬로를 넘는 강속구 투수라고 지칭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무개 군이나 아무개 양이라 부르는 것이 그 대상자에 대한 경칭이었습니다.

     

    1983년에 OB베어스에 무려 1순위로 입단한 장호연은 OB베어스와 그 뒤를 이은 두산베어스 전체를 뒤져도 강속구가 아닌 느린공 투수로서 드문 케이스입니다. KBO역사 전체를 뒤져봐도 느린공 투수가 1순위인 사례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한참 후배 유희관이 느린공투수의 계보를 이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유희관은 장호연의 다운그레이드버전이 맞습니다. 그리고 장호연은 심리전의 대가였습니다. 장호연은 투구를 하면서 상대를 바라보면서 기분 나쁘게 실실 웃곤 했습니다. 스피드가 없기에 신경전이라는 색다른 무기(!)를 활용한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장호연은 무궁무진한 변화구를 지녔고, 자유자재로 컨트롤을 구사했습니다.

     

    올드팬이라면 유희관이 아리랑볼을 자화자찬하는 장면을 보고 장호연을 연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장호연은 그렇게나 느린공을 가지고도 절정의 타격기술을 지닌 타자들을 농락했습니다. 전력피칭을 하면 나름대로 140킬로에 약간 못미치는 강속구를 지녔지만, 장호연은 언제나 삼진이나 땅볼아웃이나 아웃카운트는 같다, 는 지론을 내세워서 타자를 잡는 것에 집중을 했습니다. 느리게 던지다 갑자기 빨리 던지면 타자들이 당황하는 것을 특유의 능글거림으로 약올리곤 했습니다. 스피드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그의 신념을 타자들은 저절로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Hitting is Timing, Pitching is upset Timing.’

     

    이 말은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워렌 스판의 명언입니다.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선동렬은 일본프로야구를 겪으면서 팀 선배이자 동료인 야마모토 마사가 40이 훌쩍 넘어서까지(그는 1965년생으로 1984년부터 2015년까지, 주니치드래곤스 원클럽맨으로. 현역선수로 활약을 했습니다) 활약을 펼치는 것을 목격하면서 대오각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마침내 일갈을 하였습니다. ‘구위는 스피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제구도 중요하다.’ KBO역사를 보면, 선동렬에 필적하는 스피드를 지닌 투수는 존재했지만, 선동렬을 능가하는 투수는 없었습니다. 그 문제의 사나이 선동렬이 강조하는 말이기에 두고두고 음미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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