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시진 이야기>
    7080 인물 2023. 10. 2. 02:26
    728x90
    반응형

    삼성의 초대회장이자 오늘의 삼성의 초석을 다진 이병철 전 회장의 경영모토 인재제일은 아직까지도 진행형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업 구글이 이와 유사한 인력채용방식을 채택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구글은 최고인재라면 투자를 아끼지 아니하고, 지구 어디라도 달려간다는 채용정책으로 유명합니다. 최고인재가 우량기업을 일군다는 것은 동서양에 공통된 인식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말, 그리고 영화에서는 주연만을 기억한다는 말도 괜히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을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어리석고 우매한 백성입니다. 1등이라는 존재는 복수의 사람을 전제로 합니다. 세상은 1등이 아닌 나머지도 존재하는 공간이며, 1등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찌질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살아갈 가치와 이유가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당당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무명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키 작고 못생긴 사람이 만든 소소한 물건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누구나 아는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1등만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합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방송도 환호하는 승자만을 중점적으로 클로즈업합니다. 패자는 스쳐가는 장면으로만 등장합니다. 결승전에서 패한 자는 못한 자가 아니라 2인자일뿐입니다. 절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자도 아니고 못한 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2인자는 패자라고 낙인이 찍힙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는 대부분 풀이 죽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딴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지만, 진심은 승리를 자축하고 환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실은 그것은 승자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인자에게는 비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 찍힙니다. 2인자는 대단히 우수한 능력자임에도 승패가 갈려야 하는 스포츠의 세계이기에, ‘비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한국야구사에서 만년 2인자’, ‘비운의 에이스의 대명사로 불리는 투수는 단연 김시진입니다. 김시진 앞에는 최동원과 선동렬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수가 있었기에, 고교야구부터 대학야구, 그리고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최동원의 그늘에,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선동렬의 그늘에 가려있었습니다. 평균자책점, 다수, 그리고 탈삼진 모두 발군의 실력을 지녔지만, 큰 무대에서 각각 최동원과 선동렬이라는 거대한 벽에 늘 막혔습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였음에도 최동원 선동렬 류현진으로 이어지는 슈퍼에이스계보에는 끼지 못한 투수입니다. 엄청난 투수임에도 더 엄청난 투수가 있어서 비운을 겪은 투수입니다. 그는 고교부터 프로까지 언제나 팀 내에서는 에이스임에도 상대 팀에 더 큰 에이스가 있어서 만년 2인자라 불렸습니다.

     

    운동선수임에도 온화한 성격으로 유명하고 신사라고 불린 김시진입니다. 인터뷰장면을 보더라도 사람좋은인상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구지도자 생활도 오래 했습니다. 사생활이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야구지도자 생활을 오래 하기 어렵습니다. 김병현을 혹사시키고 언어폭력 수준의 선수비하를 했던 전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인 밥 브렌리를 보더라도 야구지도자의 인성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는 인성문제로 해임 이후 다시는 야구감독을 하지 못했습니다.

     

    김시진의 비운을 그의 실력보다 근성부족, 나약함, 투지결여 등으로 비난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고 하일성은 노골적으로 도망가는 피칭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제구력을 갖춘 김시진이 에이스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볼넷으로 정면승부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큰 경기에 약한 이미지까지 낙인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얼핏 그것이 맞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김시진의 생존전략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도망가는 피칭을 했다면 그는 에이스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강한 타자와는 승부를 기피하고 약한 타자와 승부를 집중한 것이 그의 생존전략이었다고 봅니다. 메이저리그의 명예의 전당급 투수라도 천적관계인 타자는 승부를 기피하는 경우가 꽤나 많습니다. 모두를 잘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에게 강할 수 없는 것이 승부의 세계입니다. 김시진 스스로가 자신의 구위가 최동원이나 선동렬에 한 끗발이 떨어지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불리한 조건을 이용한 것이 김시진의 생존전략이자 성공방정식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더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김시진의 생존전략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생존전략이라는 점입니다. 야구선수로서의 김시진의 등급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좋은 학벌과 준수한 외모 등의 조건을 갖춘 에이스급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이스급 인생이라고 하여 언제나 성공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발점이 저만치 앞서 있을 뿐입니다. 에이스급 조건을 구비한 사람도 비극적인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의 길로 가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김시진은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습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선택을 강제합니다.

     

     

    728x90
    반응형

    '7080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리부리 박사, 그리고 구민>  (0) 2024.02.02
    <조명남을 아십니까?>  (1) 2023.11.04
    <차명석 이야기>  (0) 2023.09.28
    <장호연, 그 느림의 미학>  (0) 2023.09.13
    <‘이맛이 정답이네!’, 그리고 정동권>  (0) 2023.06.11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