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부리부리 박사, 그리고 구민>
    7080 인물 2024. 2. 2. 11:11
    728x90
    반응형

    지금은 공중파방송국의 종일방송을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평일에는 오후 6시가 되어야 비로소 애국가를 들려준 후에 정규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토요일이 되면 오후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평일방송은 시작부터 언제나 어린이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암울한 시대라는 그 유신시대에도 어린이날은 존재했고 어린이들은 웃으면서 뛰어놀았으며, 평일방송의 시작은 어린이를 배려하면서 출발한 것입니다.

     

    어린이방송은 크게 1). 만화영화, 2). 인형극장, 3). ‘모이자 노래하자와 같은 어린이 쇼프로그램으로 구분이 됐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것은 단연 만화영화였습니다. 대부분 본방이 지난 일본 만화영화를 직수입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전국의 어린이들을 TV 앞으로 모으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만화영화의 인기에 편승해서 문구류와 딱지, 조립식 장난감 등의 산업이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만화영화의 강세시대 속에서도 유독 빛이 나는 인형극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부리부리 박사입니다. ‘부리부리 박사는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부엉이 탈을 쓴 부리부리 박사의 활약을 그렸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LWw6CWv1bo

     

    부리부리 박사의 주제가는 당시 국민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따라부를 정도로 초대박을 쳤는데, 저 역시 TV를 보다가 무수히 따라불렀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사가 입에 착 감길 정도입니다.

     

    나는야 부리부리 부리부리 박사

    도토리 세알에다 장미꽃 한송이

    달님속 계수나무 별똥별 하나

    이것저것 쓸어모아 발명을 한다 발명을 한다

    부리부리 훌딱 부리부리 훌딱

     

    그런데 위 가사 중에서 유독 헷갈렸던 것이 부리부리 훌딱이라는 대목입니다. 저는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리부리 훌따로 알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훌따가 뭘까, 하면서 여기저기 물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무렵 마루치 아라치에서 태권동자 마루치태권동작 마루치로 오랜 기간 오인한 적이 있었는데,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동작이 아닌 동자로 정정한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쓰면서 사십 년간 훌따로 알던 가사가 훌딱이 맞다는 것, 그리고 훌딱후딱의 사투리로 빨리빨리라는 의미임을 검색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부리부리 박사는 이것저것 후딱 모아서 발명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부리부리 박사는 이 발명으로 다람쥐 삼총사(딩동댕을 따서 딩굴이’, ‘동굴이’, ‘댕굴이라는 이름)컹컹이쌩쌩이라는 늑대형제들로부터 구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톰과 제리와 마찬가지로 늑대형제들은 언제나 가해자로 분하여 다람쥐 삼총사를 괴롭히지만, 부리부리 박사의 발명품으로 되치기를 당하는 것이 천편일률적인 플롯이었습니다. 이때 늑대형제들의 등장곡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겁나게 무섭게 컹컹

    날쌔게 잽싸게 쌩쌩

    우리는 심술쟁이 우리는 훼방꾼

    흐흐흐흐흐흐 컹컹

    히히히히히히 쌩쌩

    우리는 심술쟁이 우리는 훼방꾼

     

    그런데 부리부리 박사의 극중 캐릭터를 보면 무척이나 산뜻하고 경쾌한 목소리가 제격이어야 하는데, 낮고 중후한 목소리로 주로 노인이나 고위급 인사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구민 성우가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민은 ‘5분극 김삿갓 방랑기를 비롯하여 당시 인기를 누리던 라디오 드라마에서 맹활약했던 분이었습니다. 1970 ~ 80년대를 대표했던 성우 중의 한 분이 바로 구민입니다. ‘부리부리 박사의 인기에 더하여 당대를 대표했던 성우였기에, 구민의 목소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평일방송이 오후에 시작했기에 낮에는 라디오가 맹활약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외화의 더빙과 더불어 당연히 성우들의 활동이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구민은 전 국민이 알고 있었고 또한 사랑했던 성우였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미 90이 넘은 분이라 설마 살아계시나 하고 검색해보니 아직까지 살아계신 듯합니다. 구민 선생님 덕분에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냈기에 여기에 감사의 마음을 적습니다.

     

    728x90
    반응형

    '7080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복서 백인철>  (0) 2024.05.08
    <드라마여제 김수현은 왜 몰락했을까?>  (0) 2024.02.02
    <조명남을 아십니까?>  (1) 2023.11.04
    <김시진 이야기>  (2) 2023.10.02
    <차명석 이야기>  (0) 2023.09.28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