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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헌의 이 노래 : ‘오동잎’>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3. 10. 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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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낙엽입니다. 낙엽은 쇠락과 소멸의 지경에 이른 생명체를 저절로 연상하게 만듭니다. 동서고금의 문인들은 가을을 조락의 계절로 조명했고, 가을을 통하여 인생을 반추했습니다. 릴케의 가을 날은 딱 이런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낙엽은 지는 순간에도 화려한 색채를 뿜어냈습니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산을 배경으로 낙엽은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수채화를 그리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기행문 역사상 금자탑을 쌓은 정비석 작가의 산정무한을 낳았습니다.

     

    만학천봉(萬壑千峯)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山色)은 붉은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이 있고, (錄)이 있고, ()이 있고, ()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朱紅)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복잡한 것은 색()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多岐)하다. 혹은 깎은 듯이 준초(峻痒)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溫厚)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용모, 풍취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凡俗)이 아니다.

     

    봄과 여름이 각각 신생과 성장을 상징한다면, 가을과 겨울은 각각 쇠락과 사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가을을 비극적으로 묘사한 서정시가 많습니다. 푸르름으로 산천을 휘감은 잎새가 칙칙한 낙엽으로 변하는 모습은 자못 우수와 비애를 낳습니다. 그러나 이효석과 같은 당대의 문인은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격한 생동감과 활력을 피력했습니다. 이효석은 소설을 서정시처럼 반전시키는 천재과에 속한 사람이기에 이런 반전을 자연스럽게 풀어내지만, 범인(凡人)으로서는 그 발상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낙엽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가을은 소박한 시민이 느끼는 것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최헌이 부른 오동잎1970년대 중반에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최헌을 마침내 ‘10대 가수로 등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당대 중년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오동잎이 활발하게 불렸던 공간은 지금은 사라진 젓가락집관광버스에서였습니다. 술꾼들은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담은 김치찌개를 안주삼아 막소주를 허기진 뱃속에 들어부으면서, 동시에 젓가락을 열심히 두들기면서, 바로 이 오동잎을 불러댔습니다. ‘오동잎은 신명나는 가락이면서도 박자가 빠르지 않아서 따라부르기 딱인 노래입니다. 그래서 젓가락집의 안주로 그만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TMtaL5OcyE

     

    그러나 오동잎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단연 관광버스였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금융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동네주민, 직장동료, 동창 등을 중심으로 친목계 활동이 활발하였습니다. 친목계와 음주가무는 환상의 커플입니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모이면 예나 지금이나, 정확하게는 삼국시대부터, 음주가무가 기본입니다. 특히 가을이면 본격적인 야유회와 단풍놀이가 맹위를 떨쳤기에 음주가무의 융성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얌전하던 사람들도 관광버스에 올라타면, 게다가 술이 얼큰해지면, 마이크쟁탈전을 벌이면서 기어코 오동잎을 불러제꼈습니다. 그 시절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도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분위기메이커였습니다.

     

    대중가요는 당연하게 대중이 호응을 해야 뜨기 마련입니다. 최헌의 오동잎은 유난히 중년들로부터 젓가락집(자매품 대폿집’)’에서 인기를 누렸고, 가을이면 들판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빈번해지는 야유회와 단풍놀이에서 그 뜨거운 인기를 누렸습니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최헌에게 극강의 인기를 보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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