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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왕, 오일룡, 그리고 최병서>
    7080 이야기거리 2023. 11. 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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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복싱종목에서 한국은 전 체급 석권이라는 위업을 쌓았습니다. 일부 체급에서 편파판정 시비가 있기는 했지만, 한국 복싱의 위력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복싱은 아마, 프로를 불문하고 국민스포츠였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복싱의 인기는 실은 1980년대 초반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가 복싱의 인기를 잠식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시절은 한국선수가 세계챔피언이 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과의 전화통화가 생중계될 정도로 복싱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홍수환이 세계챔피언이 되면서 그의 모친과 통화하면서 했던 말,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국민유행어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국 스포츠는 전반적으로 세계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나마 복싱의 경량급 체급은 세계수준에 근접한 선수가 꾸준히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그들은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헝그리 복서라는 말이 그 시절에도 자연스럽게 통용되었고, 당시 가난한 한국에서 헝그리 스포츠의 대명사인 복싱은 자연스럽게 국민스포츠로 등극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스포츠라는 명성 그대로 당시 세계챔피언이 걸린 시합에 한국선수가 출전하면 방송국은 서로 중계를 하려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세계챔피언 결정전은 언제나 국민차원의 환희와 좌절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외는 있었습니다. 그 시절 그렇게나 많은 복싱시합을 봤지만, 가장 어이없는 경기라면 단연 김사왕의 세계타이틀 도전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김사왕 자체는 국내에서 필적할 선수가 없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맷집으로 상대방은 때리다 또 때리다 지쳐서 나가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둔탁하고 매서운 주먹으로 연승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지만, 세계타이틀의 도전자로 나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실력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김사왕은 주먹도 주먹이지만 맷집챔피언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맷집의 장사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박병학 캐스터와 오랜 기간 궁합을 맞춘 고 오일룡 해설위원이 귀에 피가 날 정도로 김사왕의 맷집을 추켜세웠습니다. 당시 챔피언 사파타는 전광석화같은 펀치를 자랑하지만, 스피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펀치력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겅을 열자 양 선수의 실력차이는 엄청났습니다. 챔피언은 펀치는 물론 다리의 스피드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김사왕의 느린 발과 느린 펀치로는 잡을 수 없었습니다.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러나 고 오일룡 해설위원은,

     

    - 김사왕의 맷집으로 조금 더 버틸 것입니다.

     

    라는 멘트를 반복했습니다. 당시 이 시합을 친구 집에서 보던 저는 이상했습니다. 복싱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을 두들겨 패는 시합인데, 얻어맞으면서도 버틴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였습니다. 실제로 사파타는 챔피언답게 펀치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국내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펀치였습니다. 김사왕은 그로기상태를 거듭하다가 복부에 정타를 맞고 KO가 되었습니다. 고 오일룡 해설위원은 심드렁하게,

     

    - ! 역시 매에는 장사가 없군요!

     

    라는 멘트를 하였습니다. 복서도 사람이고 사람은 당연히 맷집에 한계가 있는데,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버틴다는 것은 그냥 거짓말입니다. 당연히 고 오일룡 해설위원의 해설이 짜증났습니다. 복싱은 때리는 시합이지 맷집을 과시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오일룡이라는 이름 자체가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짜증나는 해설을 코미디로 고양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최병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m-bwuUc3k

     

    최병서는 특유의 성대모사로 거의 유사하게 고 오일룡 해설위원의 말투를 흉내냈습니다. ‘조금 더 버틸 것입니다!’ 그러다가 ! 매에는 장사가 없군요!’ 짜증이 폭소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웃으면서 슬며시 고 오일룡 해설위원이 이해되었습니다. 해설위원이라는 자리는 당연히 선수를 응원해야 하는 위치이지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선수를 두둔하는 것은 실은 맷집밖에 없었기에, 일종의 고육책이었던 것입니다. 고 오일룡 해설위원은 전문가답게 경기시작부터 이미 양 선수의 기량차이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실은 저같이 문외한도 실력차이를 확신했는데, 그가 몰랐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 시절은 물론 지금 생각해도 김사왕은 사파타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기량차이가 엄청났습니다. 세계무대에서 검증을 받지 못한 안방챔피언과 세계챔피언은 실력차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실은 김사왕은 세계챔피언에 도전하기 전에 세계정상급 선수와 전초전도 갖지 못했습니다. 검증의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김사왕은 도전 이전에 실력을 검증받았어야 했습니다. 김사왕은 그 이후에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최후소식이 들렸습니다. 최병서도 김사왕의 소식을 알았는지 그 이후에는 고 오일룡 해설위원의 김사왕 에피소드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극을 희극의 소재로 만드는 코미디를 만든 최병서의 능력이 감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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