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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명화, 토요명화, 그리고 명화극장>7080 이야기거리 2023. 10. 14. 15:24728x90반응형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이나 오지 않으며 애간장을 녹이는 상황을 그리는 말입니다. 똑같은 시간임에도 쏜살같이 흐르는 것이라고도 느끼기도 하고, 일각을 어마어마하게 느린 상황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에 따라 시간을 달리 느끼는 것입니다.
일각을 삼추처럼 느끼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보고싶은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시간일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보고싶은 프로그램을 유튜브나 OTT를 통하여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각이 삼추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1970년대까지 주말의 강자였던 외화를 보려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듯이 쏟아지는 잠과 싸워 이겨야만 했습니다. 우두커니 방영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 그리고 ‘명화극장’의 시그날음악이 흐르면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wU7K3TBpw
https://www.youtube.com/watch?v=K0KGINgb-L0
https://www.youtube.com/watch?v=dB2LCoaQaYo
그 시절은 TV영화 아니면 극장영화가 전부인 시절이었습니다. VTR은 한참 이후에 나왔습니다.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외화를 보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쏟아지는 ‘진또배기’ 특선영화를 보려고 목을 길게 늘였습니다. 그 시절의 놀이문화의 절대강자는 단연 TV, 그리고 드라마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조차 어려운 시청률 50 ~ 60%가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로는 2% 부족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인과의 달달한 데이트, 하면 극장에서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뺄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 외에 블록버스터 영화, 일명 개봉영화를 보는 맛은 그 시절의 짜릿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영화들을 안방극장에서 보는 것이기에 당연히 학수고대하는 시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산영화보다 훨씬 퀄리티가 높은 외화였기에 애호가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마치 외국인처럼 느끼하게 대사를 치는 성우들의 감칠맛 나는 대사가 신이 났고, 국산영화보다 퀄리티 높은 배경화면, 그리고 플롯이 흥미진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한국과 달리 이국적인 곳에서의 풍요와 여유를 간접적이나마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한국은 못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동경심을 저절로 느꼈습니다.
그 시절의 한국영화는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신성일은 모든 배역을 막대기연기 하나로 퉁쳤어도 그냥 먹어줬습니다. 신성일은 그렇게나 많이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든 배역을 국화빵처럼 똑같은 연기로 일관했습니다. 그래서 신성일의 극성팬들이라도 신성일 연기의 특징을 꼽으라면 고개를 숙입니다. 실은 주연배우들의 풀이 작았습니다. 오히려 조연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주연배우의 질적 수준 이전에 시나리오 자체가 인상적인 것이 없었고 전반적으로 B급영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찾아오는 외화를 시청자들이 그렇게나 갈망했습니다. 1990년대에 ‘한국영화걸작선’이라는 한국영화 전문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의 애국가 시청률을 기록하다가 종영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극장에서 못 봐서 그렇게나 분했던 프랑코 네로의 ‘장고’를 주말의 명화에서 보고 느낀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으며, 버트 랭커스터의 ‘진홍의 도적’을 보고 신명이 났습니다. 의상부터 음악까지 외화는 요즘 말로 ‘넘사벽’이었습니다. ‘나자리노’ 영화 자체는 황당함의 연속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선율에 넋이 나간 기억도 새롭습니다. ‘라스트 콘서트’의 애잔한 OST, 내용 자체는 통속연애소설 정도에 불과했지만 잔잔한 감동을 준 ‘러브스토리 OST’, 극장에서 이미 봤어도 감동이 울렸던 ‘유보트 OST’, 그리고 우렁찬 관악기의 씩씩한 연주가 돋보였던 ‘대탈주 OST’ 등 외화는 영화도 영화지만 OST의 맛을 느끼면서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그 시절에 주말의 황금시간대에 괜히 ‘타잔’ 등의 외화가 인기가 뜨거웠던 것이 아닙니다. 당시 가난한 한국에서는 극장영화는 물론 퀄리티가 높은 드라마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돈 많은 미국에서 만든 TV영화는 물론 극장영화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덩달아 외화전용 성우들의 인기도 뜨거웠습니다. ‘형사 콜롬보’의 전담 성우 최응찬이 작고했을 때, 당시 KBS에서 성우를 추모하는 특집프로그램을 긴급편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말의 외화극장은 사라졌습니다. 언제든지 OTT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국산드라마나 국산영화의 퀼리티가 급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외화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한국에서도 흥행의 승산이 없습니다. 이제 영화는 국적을 불문하고 재미 하나로만 승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경쟁력을 증명한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시대입니다. TV와 극장의 경계도 희미해졌습니다. 주말을 꼬박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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