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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용의 이 노래 : ‘너’>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4. 6. 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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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를 검은 마이클(마이클 잭슨)과 경쟁하는 하얀 마이클의 시대라는 말을 남긴 조지 마이클은 팝의 레전드의 레전드입니다. 팝의 황제인 마이클 잭슨과 견준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영광이자 레전드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LA 공중화장실에서의 체포 사건으로 상징이 되는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로도 오명도 남겼습니다. 그의 성적 취향과는 별개로 조지 마이클이 마약에 손을 댄 이유 중의 하나는 히트곡에 대한 압박입니다. 묘하게도 마이클 잭슨도 사망 직전까지 10년이 넘게 히트곡이 없었습니다. 마약은 아니지만, 히트곡에 대한 압박 등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무려 6천만원 상당의 약물을 복용한 것도 사후에 밝혀졌습니다.

     

    천하를 호령하고 전 세계를 강타한 메가히트곡을 부르던 가수들도 후속곡에 대한 압박이 엄청났기에, 약물에 손을 댔던 것입니다. 막대한 부를 쌓고도 몸과 마음이 병이 들 정도로 그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것입니다. 한국이라 다를 것은 없습니다. 후속곡의 압박에 마약에 손을 대고 심지어 자살까지 한 가수가 있는 것을 보면, 유명 연예인의 삶이 마냥 부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후속곡의 압박은 신인가수에게는 행복한 고민일 수 있습니다. 히트곡이 있는 기성가수보다는 맨땅에 헤딩하는 신인가수에게는 엄청난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갖은 고생을 해서 데뷔곡을 세상에 내놨는데, 히트하는 비율은 소수점의 확률입니다. 당장 아이돌로 1년에 데뷔하는 가수의 숫자만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뷔하자마자 히트하는 가수는 운과 실력은 기본에, 하늘의 보살핌까지 더해진 상황일 것입니다.

     

    다음은 데뷔하자마자 메가히트를 한 이종용의 데뷔곡이자 대표곡 의 도입부 가사입니다. 대중가요답지 않게 서정적인 가사가 일단 산뜻합니다. 곡도 지금 들어도 세련과 매력이 넘칩니다. 이종용은 노래에 맞게 감성도 살려서 꽤나 잘 불렀습니다. 모든 박자가 맞아떨어졌기에 이종용은 데뷔하자마자 스타로 등극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인가수가 뜨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스타가 되어서 부와 명예를 얻는다면 가수를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이종용은 해낸 것입니다.

     

    낙엽지는 그 숲속에 파란 바닷가에

    떨리는 손 잡아 주던 너

    별빛같은 눈망울로 영원을 약속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던 너

     

    그러나 욱일승천하던 이종용에게는 악마처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1975년의 대마초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저희 가족은 뉴스를 봤는데, 이종용 등 가수들이 대마초를 피웠다고 구속되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왜 인기가수들이 나쁜 짓을 했냐고 혀를 끌끌 차셨습니다. 어머님은 이종용의 가 나오면 흥얼거리면서 따라부르시고는 했습니다. 밥을 짓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흥얼거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용복의 어린 시절과 더불어 어머님이 애정하던 를 불렀던 이종용이 구속되자 장탄식을 하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LHfCFzIhi0

     

     

    당시 뉴스에서 수사기관이 대마초가수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했다는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일망타진은 일거에 대마초가수들을 잡았다는 의미에서 수사기관은 의기양양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문과 불법구금 등 위법수사를 감추는 수사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도 당시 대마초로 구속된 가수들 상당수가 폭행과 협박, 그리고 고문을 받았다고 회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기란 허무한 것입니다. 나중에 풀려났다고 하더라도 차갑게 식은 인기는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단했던 신중현도 인기가 싸늘하게 식었고, ‘뜨는 별이었던 조용필도 회복에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이종용의 인기가 허공으로 사라졌다가 회복이 어려운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가수활동 자체는 평생 할 수는 있지만, 실제 히트곡은 몇 개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 가수의 인생입니다. 메가히트곡 를 불렀던 이종용은 그 후에 활동을 이어갔지만, 아무래도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이종용으로서는 대마초사건으로 가수인생의 대부분이 날아간 셈입니다. 그러나 이종용, 그리고 를 사랑했던 저를 포함한 사람들은 추억으로 남겨서 아직도 노래방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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