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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프펜슬 이야기>
    7080 이야기거리 2024. 8. 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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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군대는 어쩐지 모르겠습니다만, 1990년대를 전후해서까지도 장교는 병과’, 그리고 사병은 주특기라 부르는 병종(兵種)의 구분이 있었습니다. 장교의 병종 구분을 보병’, ‘포병등으로 구분한 것에 비하여, 사병의 주특기는 100(‘일빵빵으로 불렸으며, 전투병), 900(‘구빵빵으로 불렸으며, 행정병) 등 숫자로 표기하여 구분하였습니다. 장교나 사병이나 행정 쪽은 내근직이었기에, 상대적으로 편한 보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행정 쪽에서 극악의 난이도가 있던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수작업으로 만드는 각종 괘도와 양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엑셀과 워드프로세서로 거의 모든 서류작업이 전산화가 가능하지만, 1990년초까지만 하더라도 괘도는 행정병 중에서 차트병이라 불리는 사병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양식은 자와 볼펜으로 서류에 서식을 일일이 그려야 했고 그 위에 타자병이 타자기로 타자를 했습니다. 군대는 오와 열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생명인 조직이라 정확하게 규격을 맞추고 글자를 가지런하게 만드는 것이 극악의 난이도였습니다. 그래도 땅개라 불리는 전투병보다는 낫기에, 짜증나고 머리가 아픈 차트작업이 필수적이지만, 행정병은 기꺼이 차트작업을 감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도심지에는 차트글씨 학원이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시절의 에피소드지만, 그 시절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실제로도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TV손자병법을 보면, 타자수가 타자를 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 시절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이제는 디지털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시절처럼 손으로 결재서류에 서명할 일이 없고, 전산으로 서명하고 그대로 문서를 출력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화가 급진전 되면서 알게 모르게 사라져가는 것이 필기구입니다. 수기로 문서를 작성할 일이 적어지기에, 각종 수첩이나 다이어리, 일기장, 장부 등이 사라져가는 동시에 필기구도 빛의 속도로 사라져갑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수기통장이 각종 금융회사에서 통용이 되었고, 창구 여직원이 가지런한 글씨로 통장에 기입했지만, 지금은 통장 자체가 사장되었습니다. 가지런한 글씨가 미덕인 시대였기에, 글씨를 못 쓰면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펜글씨 학원에서 글씨쓰기를 연마했던 추억은 그저 과거의 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연필이 흐리게 나와서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면서 글씨를 쓰던 게 1970년대초까지의 국민학교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침을 묻히지 않아도 진하게 나오는 연필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복병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샤프펜이라 불리는 샤프펜슬의 등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대세였던 동아연필과 문화연필에서도 샤프펜슬 자체는 만들었지만, 요즘 말로 워너비였던 것은 단연 파이롯트, 펜텔 등 일제 브랜드였습니다. 디자인부터 그립감, 그리고 필기감에서 넘사벽이었던 일제 필기구는 부잣집 아이들의 특권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필기구에서부터 일제 문구류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습니다.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습니다. 21세기 삼성전자가 소니나 도시바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문구류는 아직도 일제 브랜드가 월등한 퀄리티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비록 국산 샤프펜슬이라 할지라도 연필을 능가하는 성능은 부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글씨체를 교정한다고 하여 당시 저학년에서는 샤프펜슬을 쓰지 못하게 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샤프펜슬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선택한 필기구였습니다. 왜냐하면, 연필은 귀찮게 깍고 연필심을 다듬는 과정이 필수적이었고, 보관 중 부러지기 십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연필 특유의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좋아서 연필이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샤프펜슬이 편하기에 빛의 속도로 연필을 대체했습니다. 사람은 편한 것에 익숙해지면, 그 이전의 불편함에는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습니다. 불편한 잉크펜이나 만년필을 편리한 볼펜이나 유성펜이 대체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샤프펜슬이라 부르는 것은 지금은 폭스콘이 소유한 샤프전자의 발명품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샤프펜슬의 인기가 엄청났기에, 샤프전자로 사명을 개명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샤프펜슬은 볼펜과 더불어 필기구의 혁명을 이뤘습니다. 엑셀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그 활용도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전 세계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들이 아직도 애용하는 필기구입니다. 다이소에서 저가로 팔리는 중국산 샤프펜슬이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아직도 고가의 샤프펜슬은 일제 브랜드가 대세입니다. 제조업 강국이라는 명성이 사라져가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본의 자존심이 아직도 건재한 분야는 단연 일본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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