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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회고하며>
    7080 이야기거리 2021. 1.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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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의 선생님들은 크게 1). 수업에만 충실하고 신변잡기 등의 잡소리는 자제하는 부류와 2). 수업 외에 신변잡기 등을 말하기 좋아했던 부류로 크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7~80년대를 풍미한 DJ 이종환은 후자의 부류였습니다. 저음의 매혹적인 음성으로 일상생활을 양념으로 구수한 입담으로 청취자를 휘감았던 사람이 바로 밤의 디스크쇼를 진행했던 이종환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양주나 양담배를 즐기다가는 경을 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실은 지금은 양담배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사어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휴가기간에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유튜브로 팝스타의 곡을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이종환, 김광환, 황인용 등 유명 DJ가 들려주는 팝송을 들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하루를 정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소년 소녀의 감성으로 팝송을 들으면서 먼 장래를 상상의 나래로 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엽서에 사연을 담은 것이 방송을 타면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뿌듯해 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가요는 댄스나 발라드나 모두 트로트에 점령을 당해서 트로트 댄스나 트로트 발라드가 대세였던 시절이라 일반인에게 생소한 팝송과 팝가수를 알면 그냥 우쭈쭈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빌보드차트순위를, 마치 조선시대 보학에 심취한 선비들이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족보를 줄줄 읊어대던 것처럼, 읊어대면서 우쭐대던 학생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유튜버가 꿈이라던 요즘과 달리 음악다방을 겸하는 음악감상실의 DJ가 꿈이라는 청소년이 무척이나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음의 밤의 디스크쇼의 시그날 음악을 들으면서 야간자습을 하면서 입시에 찌들었던 학생들은 고단한 하루의 안식을 얻었습니다. 이종환은 특유의 매력이 넘치는 저음으로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을 선곡하여 영혼을 달래고 심신을 위로하였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도 이종환이 위로를 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d1mwH5aAY&t=80s

     

    당시에는 미국 등 외국과의 교류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잡지나 음반, 서적 등도 무척이나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혹자는 이종환 등 당대의 DJ들의 팝지식이 얕다고 힐난을 하지만, 당시는 외국의 왕래 자체가 어렵고 자료수집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깊이가 있는 팝지식을 얻기가 어려운 시기였기에, 이러한 비판은 그리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이종환 개인은 흑역사가 많고 구설수에도 많이 오른 사람이고, 물의도 여러 차례 일으킨 사람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공도 많지만, 과도 무척이나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팝에 비하여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진 가요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팝에 목이 마른 청소년들에게 길라잡이역할을 충실히 한 공은 절대로 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시절 이종환이 틀어주는 팝을 들었던 세대들은 지금은 대부분 6~60대 중장년이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의 감성은 오래 전에 잊은 세대들입니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를 겪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종환이란 어쩌면 젊은 날의 초상을 환기하는 아이콘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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