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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민의 이 노래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2. 3. 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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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의 마지막 소설 무명의 쥬드(Jude the Obscure)’라는 것이 있습니다. 석수쟁이로서 가방끈이 짧은 주인공 쥬드의 좌절과 사회적 모순을 비극의 작가답게 하디가 담담하게 구성한 작품입니다. 극중 주인공 쥬드는 가난한 석공의 삶에 지치고 지적 세계를 추구하였기에,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대학이 있고 대학생들이 사는 가상의 도시 크리스트민스터(실제로는 옥스퍼드’)로 거처를 옮기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크리스트민스터에 가봤으나 자신의 삶은 변함이 없어서 또 다시 좌절을 합니다. 마치 2~30대 일본여성이 프랑스 파리에 가서 실망을 해서 생겼다는 파리 증후군(Paris syndrome, 일본어: パリ症候群)’을 연상케 합니다.

     

    지방민들은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서울에 가면 뭐가 어떻다더라 하는 말을 지방민들은 태어나서부터 원 없이 주고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저 역시 지방민이었기에,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살았습니다. 박정희 정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서울공화국이고 지방푸대접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으며, 이러한 일련의 서글픈 현실이 그러한 동경의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지방은 예나 지금이나 산불, 풍수해같은 재해나 붕괴사고 등이 아니면 중앙방송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홍수가 나더라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발생하면 시시각각 상세하게 보도를 합니다. 그 중에서 압권이 바로 한강범람의 지표로 쓰이는 잠수교수위입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생긴 잠수교는 홍수나 태풍이 오면 한강수위를 나타내는 척도로서 방송국에서 상투적으로 방영을 했습니다. 지방민들은 도대체 잠수교가 어떤 다리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잠수함처럼 다리가 잠수를 하는 것인가, 그러면 잠수함처럼 방수가 된 다리 속으로 차량이 오고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잠수교 자체에 대하여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홍수나 태풍이 지나고 나면 잠수교에 대하여는 코빼기도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나 궁금했던 것이 잠수교였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서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 노래가 등장할 무렵에는 반포대교 1층에 있는 다리가 바로 잠수교로서 잠수함과 달리 그냥 물에 잠겨서 잠수교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잠수교가 한강범람의 지표로 쓰이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희한하게도 잠수교가 대중가요의 소재로 쓰이고 또한 노래도 정말 특이했기에, 이 노래를 듣자마자 귀에 꽂혔습니다.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이상하다 그치?)

    잠이오면 나는 잠을 자 (이상하다 그치?)

    자면서 너에게 편지를 써 (정말 이상하지?)

    자면서 나는 사랑을 해 (참 이상하다 그치?)

     

    왜 애인을 보면 잠이 오는지 아리송했고, 남녀가 나누는 대화가 선문답 같기도 했습니다. 뭔가 엉뚱하기도 했지만, 튀는 그 가사 때문에 이 노래는 꽤나 히트를 했고, 라디오에서도 자주 들렸습니다. 그 와중에 가수는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로 밥 먹고 산다는 비난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이란 참으로 입맛이 변덕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튀는 가사와 리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이후에는 점차 시큰둥했습니다. 한국인에게 대중가요란 술이 한잔 들어가서 흥얼거리던가 소풍이나 야유회 등 모임에서 지속적으로 부르던가, 아니면 꾸준히 방송을 타야 먹어주는데, 이 실험성이 짙은 노래는 잠깐이라면 몰라도 지속성을 띠기는 어려운 노래입니다. 단순한 가사는 귀에 금방 익지만, 쉽게 질리는 약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중은 금방 싫증을 냈습니다.

     

    그 이후에 빛의 속도로 이 노래를 잊혀졌습니다. 가수 박영민도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 필적할 만한 노래를 발표하지 못했고, 노래도 가수도 잊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튀는 노래였기에, 그 시절을 살았던 올드보이들은 수십 년만에 들어도 딱 기억하는 신통방통한 노래입니다. 누구나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저에게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아련한 그 시절을 상징하는 추억을 소환하는 노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_aO9N7T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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